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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0. 2021

<117편의 러브레터> 부모님의 러브레터가 만든 기적

살아있다면 언젠가 만난다

"To: 친애하는 릴리, 삶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생겼어요"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핸드폰 하나로 소통하는 시대, 손 편지가 낳은 기적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117편의 러브레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영화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사람들이 삶을 재건하기 위해 품은 '희망'이 팬데믹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헝가리의 작가 겸 감독 페트르 가르도시의 연출작이자 60년 전 서간을 주고받았던 부모님의 연애를 담은 실화다. 그는 영화의 원작인 《새벽의 열기》 작가이면서 이를 영화화한 <117편의 러브레터>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다재다능한 예술가다.     


컬러와 흑백 버전을 교차 편집하며 꿈을 꾸는 듯 애잔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60년 전 스웨덴에서의 연애사와 전쟁 후 역사는 흑백으로 사실감을 높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두 다발의 편지를 어제 일처럼 풀어 놓는 현재 어머니 인터뷰는 컬러로 연출했다. 화자는 어머니이며 '그때는 말이야..'라며 소녀 같은 얼굴로 회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화 <117편의 러브레터> 스틸

1945년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스웨덴의 보호소에 오게 된 스물다섯 청년 미클로시(밀란 쉬러프)는 폐 질환으로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하지만 특유의 긍정성으로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두 발로 균형을 잡는 순간, 퇴원하겠다는 삶의 의지를 어느 때보다도 불태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보호소에 있는 117명의 여성에게 편지를 보내 17명에게 답장을 받는다. 시한부 선고 시점에서 이룬 희열은 미클로시의 열정에 기름을 붓고, 그중 열아홉 릴리(에모크 피티)와 지속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둘은 백 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사랑에 빠지지만 당장 만날 수 없었다. 2,500km 거리의 물리적 제약도 그렇거니와 둘 다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신장이 나빴고 미클로시는 결핵으로 폐가 망가진 상태였다. 미클로시는 수시로 의사를 찾아가 건강 호전도를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질없음'이었다. 이에 미클로시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순간 결혼을 결심하지만, 의사는 "반년이 자네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이네"라며 남은 시간을 정리할 것을 충고한다. 그럴수록 미클로시는 보란 듯이 릴리와 더욱 진한 사랑을 키워 간다. 이로써 건강을 회복할 간절한 이유, 살아가야만 하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미클로시와 릴리는 열렬히 사랑하지만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훼방꾼들에 시달린다. 가장 큰 방해꾼은 친구 유디트였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널 살린 건 나라며 미클로시를 친구 이상으로 챙기는 살뜰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클로시가 보낸 편지나 선물을 마음대로 버리거나 부정적인 말로 질투하기에 바빠 자신은 물론 릴리의 마음마저 아프게 만든다. 이에 못지않게 서로의 의사들도 둘의 만남을 좋지 못한 시각으로 본다. 아픈 사람끼리 만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못한 일이라며 그만 둘 것을 끈질기게 회유한다.    

영화 <117편의 러브레터> 스틸

우여곡절 끝에 사흘간의 짧은 만남이 허락되자 미클로시는 위험을 무릅쓰고 릴리를 보러 단숨에 달려온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릴리가 수용소를 나오며 유대인임을 숨긴 탓에 일이 꼬여만 간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또다시 휘말리기 싫었던 이유가 화근이었다. 이 때문에 헤어진 엄마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타는 상태, 결혼도 불투명해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     


영화는 힘든 고통을 겪으며 쌓은 믿음과 사랑을 인정하는 데만 할애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피어난 긍정의 기운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담담히 위로한다. 또한 전쟁 후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분위기, 전운이 감도는 상황으로 긴장감도 형성한다. 이로써 예고된 죽음 앞에 인물의 앞날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지고, 악인이 등장하지 않고서도 극적인 감동을 유발한다.     


둘의 사랑은 계속 깊어지지만 주변에서는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이들은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희망을 찾지 못해 삶을 스스로 저버리거나, 치료하지 못해 쓰러지기도 했다. 어떻게 얻은 자유이고, 지켜낸 목숨인데 안타깝고 황망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따스한 분위기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구축한다. 죽음에 맞선 천생연분 스토리는 살아있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희망이 가짜라 할지라도 피그말리온 효과는 당신의 삶에 마법을 선사할 것이다.




평점: ★★★☆

한줄평: 부모님의 러브스토리를 듣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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