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May 24. 2021

<혼자 사는 사람들>외로움 속 당신을 향한 위로


혼밥, 혼영, 혼술. 최근 팬데믹으로 비대면, 1인 가구가 늘어났다. 혼자라면 어려워하던 사람도 당당히 혼자 사는 삶을 인증하는 시대다. 이제 혼족은 친구가 없는 외톨이의 슬픔이나, 유별나고 까칠한 성격 탓이 아니다. 자발적이고 독립적이며, 오롯함을 원하는 사람들이 대세가 된 세상인 거다.

     

영화는 최근 돌아가신 엄마와 오랫동안 연락을 끊은 아빠를 둔 진아(공승연)가 신입 사원 수진(정다은)과 옆집 남자(김모범)를 통해 슬픔과 외로움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치 관찰 카메라나 TV 예능을 보는 듯한 화면에 빠져들게 된다. 내 이야기 같아서 깊은 공감을 유발한다. 진아의 하루 중에서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가족 아니 친구, 연인 보다 혼자인 게 오히려 편한 20대 후반의 진아는 집-회사로 반복되는 루틴이 만족스럽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며 매월 이달의 사원으로 뽑힐 만큼 우수한 성적은 덤이었다. 이상한 고객, 진상 고객이라도 침착하게 응수했다. 갖은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하지만 현실의 대화보다 보이지 않는 통화가 오히려 익숙해져 버렸다. 타인 감정에 동요되기 시작하면 일이고 일상이고 무너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길고 가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콜센터 직원으로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이다.

     

출근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끼면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하루 종일 전화를 받으며 많은 고객과 대화를 나누지만 직장 내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다. 가끔 팀장방으로 불려가는 것 빼고는 대화 자체가 불필요한 단절된 생활이다. 대체 진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얼굴이 혼자가 편해진 사람들을 대변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점심 먹으러 가서도 이어폰을 끼고 먹방 영상을 보며 식사한다. 한시라도 영상과 떨어지지 않는다. 식당에서 돌아와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오후 근무를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퇴근 시간이 되면 붐비는 버스 안에서 못 본 드라마를 시청한다. 익숙한 일을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따라 걸어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옆집 남자가 복도에서 혼자 담배를 피운다.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면 연기가 다른 거 아세요?"라는 시답지 않는 농담을 던진다. 대답은커녕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혼자 사는 집이지만 인기척이 들린다. 누가 있는 걸까. 24시간 돌아가는 TV와 친구가 되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TV를 보다가 스르륵 잠이 든다. 오늘도 길었던 하루가 저문다.

     

똑같은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진아는 소라게처럼 껍질(집) 속이어야 편한 MZ 세대다. 철저히 혼자이고만 싶다. 누군가와 말을 섞고 대면하는 게 오히려 피곤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직장에서는 헤드셋, 길에서는 이어폰을 끼며 거부한다. 진아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주변 사람들의 신호에는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어떻게든 관계 맺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적 집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켰다. 아버지는 이제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요량이지만 벌어질 대로 벌어진 사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진상 고객처럼 가족 관계도 똑같이 하면 된다고 믿었다. 걱정하는 말은 귀찮은 잔소리로 여겼고, 아프다며 앓는 소리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었다.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 게 현명의 방법이라 여겼고, 되도록 말을 섞지 않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 단단한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옆집 남자의 고독사, 신입 수진(정다은)의 교육을 맡으면서 조금씩 달라져갔다. 그리고 옆집에 성훈(서현우)이 이사 오자 타인의 따스한 온기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만연화된 1인의 일상, 사막화된 관계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관계 즉, '사람들'에 방점을 찍는다. 호모사피엔스 시절부터 무리 지어 살았던 인류는 한층 복잡해진 현대 사회를 진입하며 관계망의 대대적 공사를 벌였다. 공동체와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축소되었고, 1인 가구로 세분화되었다. 그런 결과 부작용이 일어났다.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등. 마음이 아픈 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가 나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로 확대되었다.

     

영화는 혼자임을 자처한 주인공의 일상을 쫓으며 현대인의 단절된 관계와 외로운 초상을 담담히 위로한다. 그들은 분명 혼자였지만 누군가 공감해 주길 원했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라던 유행가 가사처럼. 종국에는 혼자가 될지언정 사는 동안에는 누군가와 이어지길 원하고 바랐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뼈져리게 깨닫는다. 그런 진아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공감을 산다. 덜어내기 어려워 보이는 그늘진 외로움을 드디어 걷어내고, 햇볕 따사로운 양지로 나올 수 있는 용기가 담겨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지 말고 나오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5월이 끝나기 전에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