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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n 12. 2021

<아야와 마녀> 맛집 지브리의 밋밋한 신메뉴

<아야와 마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의 연출로 2D 애니메이션 명가 지브리가 최초로 내놓은 3D CG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 스즈키 도시오가 제작한 지브리의 6년 만의 신작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원작자 다이내아 윈 존스의 <이어위그와 마녀>를 5번 정독했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소설에 반해 애니메이션화하는데 일조했다고 알려졌다.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했던 지브리의 드림팀을 꾸려 새로운 도약을 꿈꿨다. 과감히 디즈니, 픽사에 도전장을 내놓는 것일까.    


영화는 12마녀에게 쫓겨 딸을 보육원에 맡긴 마녀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료 마녀를 완전히 따돌리면 찾으로 오겠다는 알 수 없는 편지와 함께 성 모어발트 보육원에 맡겨진 지 10년. 보육원 리더로서 활약하던 아야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아이로 자라난다.    


아이들 앞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다가도 큰 눈망울과 앙증맞은 말투로 어른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영특한 소녀다. 어리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하고 싶은 일에 솔직할뿐더러,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실천하는 성격을 가졌다. 10년 동안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보육원이 더 좋다고 말하는 당돌함도 가졌다. 흔히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의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우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파워 당당함이다.    

영화 <아야와 마녀> 스틸컷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마법사 벨라와 맨드레이크에게 입양돼 마법의 집으로 오게 된다. 자신이 마녀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리 없는 아야는 그곳에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틈만 나면 도망가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때마다 사라지는 문과 붙어버린 창문에 갇혀 포기하고 눌러 앉는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울거나 무서워할 법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차라리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하지만 파란 곱슬머리 마녀 벨라는 집안일만 시킬 뿐 좀처럼 가르쳐줄 생각이 없자 사역마 고양이 토마스와 합심해 벨라를 골탕 먹일 작전을 벌인다.    


디즈니에게 도전장을 내민 지브리 야심찬 프로젝트 <아야와 마녀>는 의미 있지만 애매한 감을 감출 수 없다. 먼저 지브리에서 지향하는 익숙한 그림체를 벗어난 3D 그림체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파스텔톤의 아날로그 감성과 대자연의 아름답고 그윽한 작화 스타일은 사라졌다. 그나마 엔딩 크레딧에 삽입된 삽화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만 충분치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캐릭터에 집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줄거리가 뚝뚝 끊어지고 단순한 에피소드만 나열한다.     


위기를 모면하고 성장할 특별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아 카타르시스도 얻기 어렵다. 마치 TV 시리즈 몇 편을 보다 만 것처럼 찝찝하고 궁금하다. 풀리지 않는 다수의 복선을 회수하지 않고 급한 마무리를 한 탓에 속편 제작이 예정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밖에 없을 정도다. 또한 지브리 작품 중 최초로 록 음악을 주제곡으로 아야의 성격을 십분 반영한 'Don't Disturb Me'를 선보였으나, 귀에 꽂히는 후크적인 멜로디가 없다. 지금까지의 지브리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구축했다.    

영화 <아야와 마녀> 스틸컷

그렇지만 캐릭터 하나는 제대로 건졌다. 초등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이가 중장년층으로 보이는 두 어른과 사는 모습은 곧 다가올 고령화사회의 초상이라 볼 수 있다. 노령화 저출산, 초개인화 사회로 접어들어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공감하지 못하는 요즘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야와 겹쳐진다. 자기가 얻고 싶은 것을 스스로 얻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영리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언캐니 벨리(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지는 아야는 귀엽거나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아야 그대로 매력적인 아이다. 사슴뿔 머리에 잔뜩 화나 보이는 새초롬한 표정을 가진 말괄량이지만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충만하다. 조종한다는 뜻의 아야츠루(본명)이름답게 능수능란한 잔꾀를 부리며 위기를 모면하는 진취적인 면이 다분하다. 어른을 궁지로 몰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심술을 부리지만 얄밉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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