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열두 살인데도 정말 괜찮으세요?“
영화는 체코의 청소년의 인터넷 실태를 토대로 기획되었다. 다수의 청소년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생각지도 못한 디지털 범죄에 노출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가짜 계정으로 디지털 성범죄자를 잡기 위한 프로젝트가 결성된다. 심리 상담가, 경찰, 변호사 등 전문가의 자문 아래 온라인 아동학대의 실체를 까발린 함정수사이자 사회고발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 성범죄에 아동. 청소년이 노출되는 이유와 상세한 과정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먼저 필요하다.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n 번방, 불법 몰카, 딥페이크 등 공공연한 디지털 범죄의 수법이 그대로 공개해 불편할 수 있다. 이들을 더욱 악랄하고 추악하게 만드는 독특한 모자이크 효과와 성기 사진도 참아내야 한다. 이들은 실제 얼굴보다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변형되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중되었다. 특히 통화대기 중 들리는 연결음은 영화가 끝나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잔상이 남는다.
열흘간의 범죄 추적 다큐멘터리
바르보라 차르포바, 비트 클루삭 감독은 12살처럼 보이는 성인 여성 3명을 뽑아 가짜 계정을 만들고 실제 집처럼 꾸민 3개의 세트장에서 열흘간 접속했다. 배우 세 명은 유년 시절 진짜 물건을 가져와 세심하게 방을 꾸몄고, 12살로 보이기 위해 어려 보이는 외모를 만들어 완벽하게 설계했다. 충격적인 것은 배우 오디션 참가가 중 대다수가 어린 시절 디지털 성범죄를 경험했다고 털어왔다. 디지털 성범죄가 이미 오랜 시간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드디어 디데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들키지 않게 진짜처럼 세팅한 후 세 배우의 계정을 만들었다. 놀라운 일은 접속하자마자 전 세계 수많은 남성이 접촉하길 원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의 남성이었고, 프로필의 앳된 모습과 12살이라는 나이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채팅하길 원했다.
그들은 교묘하고 악랄했으며 무분별했다. 한창 부모와 갈등을 유발하고 친구 관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아동.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했다. 외모 칭찬으로 시작해 지속적인 세뇌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스라이팅, 급기야 돈독한 관계를 만든 뒤 성착취를 가하는 그루밍과 특정 신체 사진 요구 협박, 심지어 직접 만나자는 적극적인 요구 등. 눈 뜨고 있지만 차라리 눈 감고 싶은 일들이 랜선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이들은 왜 미성년자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실제로 랜덤 채팅방에 입장하는 성인 중 소아성애자는 2% 내외라고 한다. 접속자는 성적 쾌락을 해소하기 위해 온라인 채팅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 보다 약한 존재를 제압하기 위해 저음, 큰 몸집, 고연령을 적극 이용했다. 친밀한 관계가 자칫 틀어지면 바로 위협할 수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는 너의 부모님에게 알리겠다, 딥페이크 된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는 협박으로 일관했다. 실제 어린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할 곳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참 잘못돼도 너무 잘못되었다.
눈 감고 싶지만 눈 감으면 안 되는 이유
아동. 청소년은 자칫 호기심에 접속한 채팅창에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얻게 된다. 성범죄는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 한 아이의 인생을 통째로 망쳐버릴 수 있지만 이성과 감정을 상실한 채 쾌락만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즐겁게 즐기고 있었다. 일말의 수치심이나 양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지만 전혀 실감 나지 않는 듯했다. 몇 번이고 무리한 요구를 할 때마다 "열두 살인데도 괜찮으세요?"라고 묻지만 괜찮다고, 비밀로하면 된다고 말할 뿐이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성 때문인지 대화는 더욱 대범해지고 적나라해졌다.
이들에게 상대방은 그저 무료도 성적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심지어 제작진과 배우가 직접 찾아가 이유를 물어도 적반하장으로 행동한다.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다며 오히려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나선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 투입된 성인 배우와 스태프마저도 손사래 치게 만드는 접속자의 파렴치한 말과 행동의 심각성을 뚫어져라 지켜보게 만든다. 채팅 접속자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겪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이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게 다가왔다.
불편한 진실에 접근할수록, 불쾌한 상황을 보고 듣고 있을수록 피로감이 가중된다. 성인조차 참기 힘든 지경인데 아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분통이 터진다. 하지만 이성을 찾고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불편하고 불쾌하다고 눈 감아 버리면 안 된다. 오히려 다수의 사람이 함께 지켜보며 감시하는 눈이 되어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을 잘 알아야 하듯. 지피지기 백전백승. 악과 싸우기 위해 악을 잘 알아야 한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이유와도 같다. 안타깝게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때문에 아이들은 볼 수 없지만 오랜 시간 회자되길 바란다. 최근 사회의 물의를 일으켰던 수많은 디지털 범죄의 경각심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추하는 기회가 되길 염원한다. 괜찮다고, 다 지나갔다고 안심하는 사이, 우리 주변의 악은 더 교묘해진 방법으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