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한민국에서는 IPTV로 직행할 뻔한 영화를 관객이 강제 개봉 시켰다는 부제를 달아 홍보했던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덴마크 영화 <더 길티>였다. 한국 수입사에서 <개봉미정>이라는 이름으로 등급 심의를 신청했다는 카피가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흥행이 보장되지 않아서였다. 우리나라 관객에게 생소한 덴마크 영화이자 감독의 데뷔작이며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겉모습에 가려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숨은 진주였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당시 CGV에서만 단독 개봉했고 제이크 질렌한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콜도 받았다. 이후 3년 만에 10월 1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단독 스트리밍 중이다.
원작은 199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12 콜센터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벌어지는 1인 극이다. 두통 유발, 답답한 가슴, 위경련을 일으킬만한 극도의 압박감이 포인트다. 귀를 최대한 열어두고 모든 소리를 흡수해 티끌 같은 단서를 끌어 보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라이브콜이 진행된다. 따라서 반드시 극장이나 사운드 좋은 플레이어로 영화를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본격 ASMR 영화, 고막에 집중하라
조(제이크 질렌할)은 경찰이다. 최근 특정 사건에 연루되어 911 콜센터로 좌천되었으며 재판 중이다. 오늘은 지긋지긋한 콜센터 근무 마지막 날이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오늘도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지만 내일 있을 재판 생각에 일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동료의 위증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별거 중이던 아내와 딸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조를 에워싼다. 평소 앓고 있는 천식까지 도져 괴롭다. 거기에 큰 산불이 캘리포니아에서 LA로 번지면서 전화통이 불나고 있다. 정신없는 와중에 조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여성은 울먹이며 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장난 전화인가 싶어 끊으려는 찰나 자세히 듣고 있자니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조는 직감적으로 납치임을 느낀다. 여성을 안심시키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묻다, 집에 갓난 아기와 여섯 살 된 아이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단서가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더 끌어내야 했지만 여성은 통화를 오래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이후부터 조는 마치 내 가족의 일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한다. 경찰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돕고자 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권력을 행사하다 동료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군분투 끝에 여성의 신상을 알아내 집으로 전화를 걸자,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가 받는다. 울먹이는 아이는 동생이 칼에 놀랐다고 고백한다. 칼을 든 아빠, 울먹이는 아이들, 공포에 떠는 엄마가 순식간에 떠오른다. 여성은 전남편에게 납치되어 어디론가 가고 있고, 집에는 위험에 처한 아이가 둘이나 있다. 조는 이를 단서 삼아 퍼즐을 맞춘다. 과연 조는 무사히 모두를 구해줄 수 있을까.
보이지 않자 들리기 시작했다
영화는 전화를 통해서만 단서를 찾고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한계점이 명확하다. 오직 기댈 것은 전화 넘어 들리는 소리일 뿐이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자세한 상황을 묻고 답하는 과정 때문에 집중하게 되고, 관객은 묘사하는 대로 조와 함께 상황을 유추하게 된다. 정확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고 청각에 의존해 스스로 상상해 만들어가는 체험이다.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는 긴박함, 절박함,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가 얼마나 시각적인 것에 현혹되는지, 그로 인해 간과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나아가 일종의 편견에 대해 고찰한다. 복잡한 사회 속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섣부른 판단과 오해가 불러일으킨 파장에 주목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조직에서 개인의 돌출행동은 용인할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계층의 직권남용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공권력과 과실치사의 책임은 누가 물어야 할까. 좋은 사람이란 누구일까. 마음속의 물음이 끊이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 정보, 소문, 소리를 오히려 선명하게 들어야 하는 현대인의 비극이 재현된다. The Guilty라는 이중적인 뜻처럼 죄책감과 유죄 사이를 떠돈다. 조의 양심 한구석에 있던 죄책감은 전화를 받기 전과 후로 극명히 나뉜다. 경찰의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고, 정당방위로 조작하려 했던 마음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지만. 정의를 구현하고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경찰의 직업적 사명은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바쁜 일상을 사느라 처음과 다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주는 따끔한 충고는 꽤나 얼얼하다. 곱씹을수록 죄책감과 불안이 밀려오는 영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더 길티>는 제한 상황의 한계와 장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소리와 빛을 이용해 심리적인 변화를 포착했고, 배우 한 명이 익명의 전화를 받기만 하는데도 날카로운 서스펜스가 최고조에 다다른다. 다만, 덴마크 원작과 유사한 설정으로 매력은 떨어진다. 오히려 조명과 카메라의 다양한 변화를 준 원작의 방식이 신선하다. 제이크 질렌한의 끓어오르고 식기를 반복하는 연기는 완벽하다 못해 출중하다. 아역부터 시작했던 연기의 폭이 중년이 되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배우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