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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Nov 15. 2021

<어 굿 맨>트랜스맨의 임신과 갈등

편견은 참 무섭다. 영화 <어 굿 맨>을 보기 전 포털 사이트에서 노에미 멜르랑을 열심히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신인인 줄만 알았던 남성은 사실 노에미 멜르랑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다소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노에미 멜르랑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화가 역을 소화한 배우다. 고전적인 여성 이미지가 강렬해서일까. 짧은 머리에 거친 표정, 굵은 중저음, 덥수룩한 검은 수염, 터벅터벅 걷는 자세가 낯설었다.  영화가 시작될수록 여성의 모습은 지워가고 한 남성을 연기하는 배우만 남아 있었다.


영화는 사라에서 벤자민(노에미 멜르랑)이 된 트랜스맨(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의 성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과 그의 연인 오드(소코)가 가족을 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을 드디어 확인했고 연인이 되었으며, 둘의 생각이 일치했다. 하지만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아이와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을 다시 생각해 봐야만 했다. 벤자민은 트랜스맨이었다. 이를 숨긴 채 살아왔을 시간과 고민했을 과정을 조심스럽게 훑어보는 영화다.


화려했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섬마을로 이사해 정착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마을 사람들은 벤자민의 정체성을 잘 모른다. 규칙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맞고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수술을 생각하고 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가족을 설득하는데도 그랬고, 둘 사이에는 굳건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세상이 뭐라 떠들든 말든"

영화 <어 굿 맨> 스틸컷

<어 굿 맨>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의 생애를 담담히 따라가며 서로 다른 삶을 공유해 보는 시간이다. 태어난 성(性)을 거부하며 30년 만에 법적으로 원하는 신분증을 부여받았지만 이 커플에게 또 다른 난관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리고 싶은 평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살을 찢는 고통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영화 속에는 트랜스맨 벤자민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유명 발레리나였던 오드는 벤자민을 위해 유명 커리어를 버렸다. 한적한 곳에서 아이들의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벤자민이 안정되기까지 희생하게 된다. 또한 아이도 간절하게 바랐기에 연이은 인공수정 실패는 오드를 시험에 들게 했다. 고민 끝에 벤자민이 임신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 가족에서 자신은 위치를 찾지 못해 흔들리게 된다.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도, 떠오르는 발레리나도 아닌 먼지 같은 존재일까 봐 두려움이 앞선다.


여러 가지로 도전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첫째, 관용적이라 믿었던 프랑스의 보수적인 시선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트랜스 가족의 모습과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훗날 엄마이자 아빠인 부모를 자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엄마를 엄마라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주제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했기에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둘째, 사회적 젠더(Gender)와 생물학적 젠더(Sex) 사이에 있는 노에미 멜르랑의 묘한 이미지가 잊히지 않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 높은 연기가 인상적이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고자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 봤다. 그것도 실존하지 않는 영화 속 캐릭터를 꽤 오랫동안 놔주지 못해 아직도 마음 한편에 살아 있는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셋째, 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태어날 때 스스로 고를 수 없는 성별을 거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본인과 가족이 아니고서야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완전을 향해 죽을 때까지 정진한다고 생각한 모든 개념이 무너진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불평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던 지난날을 떠올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려운 일인 된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가깝게는 유명 배우인 엘리엇 페이지의 트랜스맨 커밍아웃을 생각해봐도 좋겠다.


단, 중요한 순간마다 마치 연극의 장과 장사이를 나누듯 암전 효과를 주어 친절하게 끊어준다. 쉽지 않은 소재를 전달하기 위해 관객의 이해와 숨통을 터주는 효과를 노린 듯 보인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정직한 연출은 다소 심심하지만 두 배우의 눈빛 연기만으로도 꽉 찬 풍성함을 더한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상황에 의심과 의문을 가져보는 하루가 되길 이 영화는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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