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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06. 2021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매혹적이고 스타일리시한 호러

어쩌면 매력적인 두 배우의 캐스팅이 가능했을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에서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작품 중 하나였던 이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보러 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의 구성과 이야기는 여느 호러 장르에서 많이 차용된 클리셰이나. 문제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아린 '스타일'이었다. 색감, 카메라 워킹, 배우의 케미, 음악, 패션과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 등 혼을 쏙 빼놓았다. 황홀한 미장센이 제대로 물 만났다.     


영국 시골에서 할머니와 사는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엄마가 못다 이룬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다. 할머니는 자식을 잃고 손녀마저 잃고 싶지 않아 불안하기만 하다. 딸의 정신적인 불안을 손녀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엘리는 엄마가 자주 눈앞에 보인다는 둥 죽은 사람을 보는 능력이 있다.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스틸컷

그러던 어느 날 손꼽았던 패션 학교에 입학하게 된 엘리는 런던으로 상경한다. 그리고 런던 패션의 거리 소호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기숙사 룸메이트의 시기와 동급생의 따돌림에 낡은 원룸을 얻은 엘리는 밤마다 꿈속에서 1960년대 소호 거리를 누비며 가수를 꿈꾸는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꿈같았지만 거듭될수록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어쩌면 만난다기 보다, 경험한다는 말이 맞다고 할 정도로 샌디를 4Dx 관람처럼 오롯이 체험하게 된 엘리는 그 경험에 빠져들기 위해 매일 잠들기를 기다린다. 가수가 되기 위해 소호 초고의 매니저를 찾아가고 매력적인 60년대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샌디에게 빠져든 엘리.


낮 시간을 온통 영감받은 콘셉트를 주체하지 못해 소진하는 데 쓴다. 화려함을 좇아 샌디처럼 금발로 염색하고 스타일을 카피한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샌디로 빙의한 듯 자신감을 얻다가도 곧 주눅 들게 된다. 엘리는 결국 샌디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낯선 노신사는 물론, 예전부터 보이던 환영의 잔상까지 더해져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엘리. 급기야 샌디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며 혼란에 빠진다. 학업과 친구 관계까지 좀먹는 피폐한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거린다. 과연 엘리가 본 것은 꿈일까, 환상일까, 환영일까.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스틸컷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토마신 매킨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의 조합만으로도 관객을 휘어잡는 마력을 선사한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두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뜨거운데 미장센에 흠뻑 취한다. 이 모든 것에는 스타일리시함을 추구하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과 할리우드가 사랑한 정정훈 촬영감독이 있어 가능했다. 호러, 스릴러 영화 팬으로서 이보다 더할 나위 없이 공포와 아름다움의 조합이 반가운 영화가 있을까 싶다. 근래에 본 극장 관람 영화 중 손에 꼽는 미장센을 품었다.     


영화는 60년 대와 2021년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성공을 위해 여성이 겪었던 다양한 성(性) 착취와 병들어가만 가는 정신과 신체를 불안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현재도 성공을 꿈꾸는 젊은 영혼을 짓밟는 일은 쇼비즈니스 및 엔터테이너 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기에 슬프다. 70-80년 가수나 배우가 되기 위해 호스티스와 에로배우를 전전했던 수많은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스틸컷

또 한편으로는 대도시의 막연한 공포를 스타일리시한 호러 콘셉트로 치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빛나는 별이 아닌 짜릿한 네온사인이 되어 짓누른다. 화려한 소호 거리 뒤 추악함을 들추기 위해 두 배우의 아름다움은 어느 때보다 과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거울에 비친 엘리의 모습,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샌디가 서로 이어져 있다. 어느 밤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에 감긴 소호 거리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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