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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30. 2021

<램>참 이상하게 빠져드네 이 영화..


이제는 보증수표가 되어버린 A24의 믿고 보는 예술 호러 가 또 하나 찾아왔다. 누가 '양'을 순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하얗고 몽그러운 따뜻한 털, 풀을 뜯는 무해한 얼굴을 하고 있는 초식 동물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종종 서양 공포영화에서 악마와 비견되는 염소와 뿔 때문인 것 같았다. 양도 그런 의미에서 뿔을 가지고 있고 생각했던 것 외로 고집이 세다. 그 점에 주목하면 이 영화는 굉장히 두렵다. 섬뜩하고 기묘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이기도 하다.     


모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영화 <램> 스틸컷

말 없는 젊은 부부가 조용히 양 목장과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눈 폭풍이 심하게 일어나던 크리스마스 날 양 목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르렁 거리는 소리의 음산한 놈이 찾아온 이후 양의 몸에서 태어난 새끼. 그것은 실시 양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과 어깨를 타고 한 쪽은 손, 한쪽은 굽을 가진 반인반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새끼를 받던 부부는 놀랐지만 제 자식처럼 극진히 돌보기로 했다.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저 하늘이 주신 선물처럼 잃어버린 자식의 이름 '아다'를 다시 쓸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다는 부부의 자식이었고, 부모가 될 두 번째 기회였다. 창고 한 곁에 있던 아기 침대와 용품을 다시 들여놓고 행복에 겨워했다.     


하지만 어미 양은 시도 때도 없이 아다가 자고 있는 창가를 서성거리며 울부짖었다. 말만 못 할 뿐이지 "내 아기 내놔"라는 서글프고 드센 울음소리가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언제든지 아이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리아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어미 양을 총으로 사살하기에 이른다. 낳아준 정과 기른 정 중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아다는 마리아의 아기다. 세 가족은 다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믿었었다.     


남편 잉그바르(힐마르 스나에르 구오나손)와 아내 마리아(누미 라파스)는 아이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 있다. 그 슬픔을 노동으로 이겨내고 있는 듯 보인다. 삶은 무미건조하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이 규칙적으로 일에만 몰두하고 적당히 몸을 쓰고 잠자리에 든다. 목적 없이 살아가던 부부에게 어느 날 선물 같은 아이가 찾아왔다. 과연 그 존재는 선물일까 재앙일까?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기묘한 뒤틀림     


영화 <램>은 A24에서 만든 신작 호러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독창성상, 권위 있는 장르 영화제인 시체스영화제 3관왕, 올해(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 아이슬란드 출품작이자 강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얼마나 독창적이라서 이름대로 특별하고 클리셰 없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아이슬란드의 신예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은 생경한 아이슬란드어를 통해 공포를 깊이를 더하고 있다.     

영화 <램> 스틸컷

안개가 깔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직감적인 동물들(양, 개, 고양이)이 먼저 그것의 존재를 알고 두려워하는 형상. 무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분위기만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이 배가 되었다. 거기에 아이슬란드 설화까지 더해져 금기의 무엇을 건드려 화를 면하지 못할 거란 심적 압박이 계속된다. 이 영화 뭔가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아 오매불망 궁금하게 만드는 예열을 참 잘 해 둔 영리한 호러다.     


그 '알 수 없음'은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 낸다. 무엇도 정답은 아니다. 추측하고 상상일 뿐.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 나쁜 물음표가 며칠 내내 따라다닌다.     


먼저 성경에 기초를 둘 수 있다. 약간씩 변형된 이름이지만 엄마 마리아의 이름은 동정녀 마리아, 아들 아다의 이름은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아담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날 말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류 최초 살인 이야기 '카인과 아벨'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형제는 아담과 이브의 자식이다. 농부인 카인은 첫 수확물인 보리를, 양치기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친다. 그러나 신은 아벨의 제물만 받게 되고 이에 질투를 느낀 카인은 동생을 살해한다. 신의 분노를 사게 된 카인은 이마에 낙인이 박힌 채 에단 동산에서 추방된다.     


부부는 양목장과 농사짓는 땅 모두를 소유하고 있다. 트랙터가 중간에 고장 나 말썽을 일으키는 점을 떠올려 짐작할 수 있다. 마리아가 어미 양을 죽인 점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조여오는 공포가 조성된다. 부부는 각자 다른 꿈을 꾸며 불안해하고 이는 결국 결말에 다다라 실행된다. 과거의 행복을 되찾고 싶은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분투하다 씻을 수 없는 죄를 만들어 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두 사람을 잠식하고 결국 파멸로 이끈다.     

영화 <램> 스틸컷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 성경의 구조를 따르지 않고 변형된다. 감독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생경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는 포부를 밝혔다. 때문에 예상했던 모든 것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모성애,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대자연과 엮어 색다르게 표현했다. 아이슬란드의 다양한 민담 설화를 바탕으로 어릴 적 목장에서 자랐던 경험을 엮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램>은 관객이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형광등 같은 마력을 지녔다. 당장 보고 나서는 멍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집에 가는 중에도 계속 의문점이 따라다니고, 잠자리에 누워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자신만의 관점을 발견하는 영화다. 굉장히 낯설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정할 수 없다. 신화적, 종교적, 초자연적인 성질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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