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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하우스 오브 구찌> 구찌로 시집간 며느리

by 장혜령

거장 리들리 스콧이 만든 구찌 가문의 민낯은 우아하면서도 발칙했다. 논픽션을 각색해 실화와 허구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능수능란한 솜씨로 만들어 낸 리들리 스콧이 재벌의 추악함을 들췄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구찌 가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화화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엎어지고 세워지고를 반복하다 드디어 거장에 의해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캐스팅은 화려하고 음악 선곡도 기가 막힌다. 적재적소에 쓰인 유명 팝은 당시를 이해하고 흐름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가수이자 배우인 레이디 가가의 입김이 개입되지 않았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패션 업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눈 돌아가는 스타일링이 158분을 꽉 채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한 가문의 흥망성쇠에 항상 '며느리'가 악인을 맡는 것일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은 불씨를 발견하고 기름을 부어버린 사람은 역시나 며느리다. 세상에 나쁜 며느리는 없다. 다만, 파트리치아 개인의 거침없는 질주가 문제였단 말이다.


욕망을 품은 여인, 구찌 며느리 되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트럭 운송회사 아버지를 둔 평범한 집안의 딸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파티에서 만난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에 골인한다. 패션과 경영에 전혀 관심 없던 마우리치오는 변호사 준비를 하던 중 파트리치아를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된다. 이내 결혼 승낙을 받으려 했지만 아버지 로돌포(제레미 아이언스)의 반대에 부딪힌다.


이후 집을 나와 파트리치아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결혼식을 올린 마우리치오. 하지만 부잣집 도련님의 서민 체험기에 시간을 쏟을 수 없던 파트리치아는 구찌라는 이름을 받기 위해 은밀히 계획을 세운다. 그 첫 번째는 남편을 꼬드겨 삼촌 알도(알 파치노)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시아버지가 아니라면 시삼촌이라도 구워삶아야 한다고 본 것. 이게 바로 파트리치아가 추구하는 가족의 이름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 결말.jpeg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뉴욕과 일본의 고객 관리를 맡고 있었던 알도는 두 사람을 적극 포용해 준다. 알도는 전문 경영인이지만 아들 파올로(자레드 레토)에게 승계할 생각이 없었다. 조카 부부를 이용해 구찌 브랜드를 전 세계로 확장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파올로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재능도 노력도 부족한 자아도취 디자이너다. 사실상 구찌 가문의 수치로 전락했다. 믿음직스러운 아들이라기보다 챙겨줘야 하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구찌 스타일과는 확연하게 다른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로 주의의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인 파올로는 무능력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났다. 그래서 늘 억눌려있었고 누가 발견해 주길 기대했다.


한편, 파트리치아는 여전히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업 통제권을 얻을 수 없자 세 번째로 파올로와 거래를 시도했다. 이때부터 잠잠하던 가족 경영은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자신이 구찌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 생각은 암처럼 자라났다.


거장의 염원이 담긴 20년의 기다림
하우스 오브 구찌 리뷰.jpeg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구찌 가문은 1921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작은 가죽 공방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명품 기업으로 성장했던 8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끼리 왜 이러나 싶은 치명적인 경영권 스캔들로 와해되고 막장으로 치닫는다. 뼈대 있는 가문이건, 많이 배우고 돈이 아주 많던, 인간은 다 똑같았다. 실소를 머금게 만드는 모래 위에 세운 하우스 오브 구찌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원작 출간 후 간절히 염원했던 작품이다. 패션 명가에서 벌어진 탐욕과 광기, 배신, 몰락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추려냈다.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가 만나 결혼하고 헤어질 무렵 1970-90대를 다루고 있다. 때문에 점차 변화는 패션, 헤어, 화장 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있다.


동명의 원작을 아내 지안니나 스콧으로 부터 추천받아 읽고 단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원작은 이탈리아 매거진 '루나'편집장이자 이탈리아 패션 산업을 취재했던 사라 게이 포든이 쓴 논픽션이다. 실제 구찌 왕조의 성장과 붕괴, 부활에 관해 관련 인물 100여 명의 인터뷰와 문서를 통해 소설처럼 각색했다.


화제의 이야기는 영화화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8년 리들리 스콧이 안젤리나 졸리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제작을 추진했으나 구찌 가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2016년에는 왕가위 감독이 마고 로비 주연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좌절된 일화가 있다. 결국, 메가폰은 돌고 돌아 리들리 스콧에게 돌아갔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거리두기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영화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남편을 쥐락펴락했던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의 분량을 나눠 마치 연극의 막처럼 활용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1막, 2막의 서사에 각각의 캐릭터를 알맞게 가감해 이야기와 캐릭터를 배치했다. 경영권을 두고 서로 뺏고 뺏기는 과정의 치졸함과 악랄함, 권모술수의 퍼레이드다. 가족이란 단어에 이어 붙이기 힘든 살벌한 단어가 '가족주의'라는 허울 속 숨겨져 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가족끼리는 사업하는 게 아니라는 불문율 말이다.


스타일, 미장센, 이야기, 메시지 뭐 하나 빼놓지 않고 영화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거장의 손길은 이번에도 빛났다. SF, 드라마, 스릴러, 액션, 시대극 등 장르 불문 비상함을 가진 리들리 스콧은 배우 캐스팅에 가장 큰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담 드라이버는 리들리 스콧의 전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도 참여해 할리우드 대세임을 증명했다.


캐릭터의 진정성을 필두로 촘촘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연출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 셀마 헤이엑, 잭 휴스턴 등. 아카데미 수상 및 노미네이트 톱스타를 한데 모아 두 번 다시 없을 화려한 라인업을 만들어 냈다.


이를 위해 레이디 가가는 6개월간 북부 이탈리아 발음을 연습하며 체중 증량은 물론, 파트리치아가 살았던 지역을 거닐며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다. <스타 이즈 본>을 통해 퍼포먼스 가수에서 연기자로 눈도장을 찍은 레이디 가가는 <하우스 오브 구찌>를 통해 조금 더 성장했다.


다만, 논픽션을 바탕으로 한 전작 <올 더 머니>와 비교했을 때 유머와 드라마틱한 연출을 줄였다. 이 부분이 호불호를 낳을만하다.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는 구찌 가문의 몰락을 굳이 영화로 볼 이유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실에 따라 각색했고 다소 건조한 연출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객관적 시선으로 판단은 철저히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노련함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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