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의 영리한 각색, 아역과 에단 호크의 케미
영화 <블랙폰>은 '조 힐'의 호러 단편 모음집 《20세기 고스트》 중 '블랙폰'을 영화화했다.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 작품답게 촘촘한 각본과 적재적소의 점프 스퀘어가 아직 늦더위가 남아 있는 날씨에 제격이다. 초자연적 현상, 스릴러적 장르와 성장이란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이 괜찮다. 알콜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의 그늘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남매 피니와 그웬의 유대감이 숭고함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13살 피니(메이슨 테임즈)는 동생과 아빠와 셋이서 살고 있다. 또래보다 연약해 보이는 탓에 놀림과 폭력에 시달리나 동생을 아끼는 마음과 과학에 관심 많은 똑똑한 아이다. 11살 동생 스웬(매들린 맥그로)은 가끔 이상한 꿈 때문에 아빠의 화를 돋운다. 엄마의 기질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하지만 특유의 밝고 주체적인 성격 탓에 아빠와 자주 부딪힌다. 엄마가 보고 싶고 힘들지만 항상 오빠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끈끈한 남매애를 쌓아간다.
최근 동네 분위기가 흉흉하다. 피니와 그웬 또래의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아동유괴사건이 장기화되자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피니는 검은차에서 내린 이상한 남자와 마주친다. 실수로 떨어진 물건을 줍던 남자는 기이한 분장을 하고 있었다. 도와주려던 피니가 차 안에 검은풍선에 한눈판 사이 납치해 어디론가 데려갔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지하실에 감금된 피니는 말로만 듣던 납치범 그래버(에단 호크)와 대면한다. 그는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당장 죽이지 않겠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극심한 공포와 허기가 밀려온 피니. 벽에 걸린 검은 전화기에서 갑자기 벨이 울려 놀라고 만다. 선 끊긴 전화기에서 들리는 귀를 찢을 듯한 벨소리는 살려달란 자지러지는 울음 같았다. 고심 끝에 전화를 받자 죽은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가 울리면 반드시 받으라는 목소리,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단편 소설의 괜찮은 확장
영화는 단편 소설의 큰 줄기를 가져와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원작과 영화는 소소한 점이 다르다. 피니는 아빠와 철물점에 갔다가 음료를 홀짝이다가 납치된다. 가면을 쓴 채 오로지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연기한 사이코패스 그래버는 거구의 혐오스러운 외형을 가진 소심하고 뒤틀린 성격의 소유자다. 이상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는 아둔한 원작의 형이 무언가를 조금씩 의심하는 동생으로 바꿔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피니의 누나 수재너를 그웬이란 동생으로 수정해 엄마로부터 유전된 영적 능력자로 그려냈다. 원작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만들어나간 영리한 설정이며, 곳곳에 뿌려 놓은 떡밥을 남김없이 수거하는 깔끔함까지 갖추었다.
밀실 탈출 스릴러로써 장르적 충실도를 높였다. 억울하게 붙잡혀 죽은 친구들이 단서를 제공하면서 우정과 성장의 의미까지 확장했다. 아무리 무서운 상대가 나타나도 지켜주려는 마음, 이겨낼 의지가 있다면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던져 준다.
살아남지 못하고 처참히 무너졌던 친구들이 경험은 피니를 응원한다. 단순히 그래버를 향한 복수심이라고 단정하기보다. 힘을 모아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치로 해석된다. 그래서 <블랙폰>이 호러 스릴러의 장르이지만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한 이유다.
에단 호크의 묵직한 존재감
에단 호크는 맨 얼굴이 1초도 나오지 않지만 압살당할 만큼의 존재감을 떨친다. 그래버의 외형은 10살 또래 아이들이 무서워할 가면으로 완성했다. 조커를 연상하게 만드는 하얀 피부와 귀까지 찢어진 미소, 머리에 달린 뿔은 악마의 형상이라 섬뜩한 공포감을 안긴다. 성인이 봐도 소름 끼치는 기괴한 모습이다.
손수 만든 음식을 다정히 가져오지만, 문을 반쯤 열어두어 호기심을 유도한다. 아이가 열린 문틈으로 계단을 오르면, 기다렸다는 듯 폭력으로 제압하는 변태적 쾌감을 즐긴다. 이른바 ‘나쁜 아이 놀이’에 중독된 괴물 그래버는 희대의 악인으로 그려진다.
동거 중인 동생 맥스마저 끔찍한 일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철두철미하게 관리한 지능 높은 사이코패스기도 하다. 대체 ‘왜?’라는 의문부호가 떠오르는 캐릭터를 통해 '묻지마 범죄'의 잔혹성과 베일에 싸여 공포심이 충족되는 방향을 택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화 한다면 그의 전사를 소재로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블룸 하우스의 프랜차이즈 공포물은 언제나 기대치가 크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더 퍼지> 등이 히트했다. 그래서일까. <살인 소설>로 에단 호크, 블룸 하우스 제작사와 이미 호흡을 맞추었던 ‘스콧 데릭슨’ 감독은 <블랙폰>의 흥행에 따라 프랜차이즈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MCU <닥터 스트레인지> 감독이기도 한 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