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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n 07. 2023

<줄리아의 인생극장> 프랑스판 '슬라이딩 도어즈'

인간은 태어나 한 가지 삶 밖에 살지 못한다. 영생을 꿈꾸지만 유한함에 부딪히는 인간. 어쩔 수 없이 영화나 책을 통해 다른 삶을 대리 체험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슬픈 존재다.


영화 같은 인생이 4가지로 펼쳐진다면 어떨까? 한 가지 상황에서 “그래 결심했어!”의 A 아니면 B를 선택했을 때 보다 더 큰 가능성.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꿈 인이 현실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일일 테다.


1인 4역의 한 여성의 운명 극장

영화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암스테르담에서 피아노 유학 중이던 17세 줄리아(루 드 라주)는 친구와 역사의 현장에 갈 마음에 들떠 있다. 하지만 여권을 놓고 와 되돌아가게 되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친구가 떨어뜨린 여권을 주워 독일에 간 줄리아는 어떨까. 그녀는 역사의 현장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하며 전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거듭난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왔고 서점에서 책을 떨어뜨려 만난 남자(라파엘 페르소나즈)와 사랑에 빠진다. 부모님과 식사 후 집에 돌아가는 스쿠터로 사고를 당하게 된 줄리아에게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지며 삶을 조각낸다. 음악, 커리어, 가족, 친구 등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가 모두 본인의 자유 의지임을 깨닫는다.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인생은 속절없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2052년 80세가 되었고 주마등처럼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우연이란 선택이 만든 필연

영화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영화는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4가지 운명을 느슨하게 보여준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모호하고 환상적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필연이 되는 운명을 논한다. 순간의 선택이 결혼, 이혼, 출산, 죽음으로 이어진다. 피아노를 계속하거나 하지 않아 벌어진 전환점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이를 위해 87 군데에서 촬영하며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했다.

 

동전의 이면처럼 어둡고 밝은 양면성이 ‘루 드 라주’ 하드캐리로 관통한다. 17세부터 80세까지를 연기한 섬세함이 ‘우연’의 영향력을 제대로 표현한다. ‘루 드 라주’는 <아뉴스 데이>(2017)에서 2차 세계대전 중 수녀원에서 일어난 비극을 몰래 돕는 프랑스 의사 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백설공주를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각색한 <스노우 화이트> (2018)를 통해 관능미를 뽐냈다. <줄리아의 인생극장>에서는 4가지 팔색조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감독 ‘올리바에 트레네’는 인도에서 리메이크한 <블라인드 멜로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줄리아의 인생극장>은 단편 <피아노 조율사>(2011)를 모티브로 한다. 클래식 음악과 피아노를 공통으로 삼았지만, 스타일과 주제면에서 다른 시도다.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와 비슷한 컨셉이지만 네 인물이 그저 '루 드 라주' 배우 자체인 것 같아서 어느 순간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의도했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영화의 큰 결함이 아닐까 싶다. 누가 누구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결말이 망쳤다. 80세가 된 줄리아의 등장은 앞 부분의 이야기를 다 갉아 먹는 진부한 선택이라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순전히 배우 '루 드 라주' 때문에 본거라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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