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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n 12. 2023

<카일리 블루스> 89년생 중국 감독의 비범한 데뷔작

<지구 최후의 밤> 이 나오게 된 떡잎

천성(진영충)은 감옥에서 9년을 복역한 후 이복동생 라오와이의 아들 웨이웨이를 찾으려는 의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생전 웨이웨이를 키우길 바라셨던 어머니의 무언의 목소리라고만 생각했다. 삼촌이란 말 대신 형이라 부르는 자식 같은 조카와 추억을 잊지 못해 이끌리듯 쫓는다. 

 

며칠 전 어머니의 물건이 꿈에 나타나며 말을 걸어 오는 것 같았다. 강물에 떠다니는 어머니의 푸른 신발,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모를 루성 소리, 먀오인들의 모습, 납염을 비추는 불빛이 아련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에워싼 것들에서 허우적거린다. 결국 어머니의 유산인 집을 동생에게 넘기면서까지 조카를 데려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느슨한 플롯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

영화 <카일리 블루스> 스틸컷

‘비간’은 <지구 최후의 밤>(2018)으로 중국 영화계의 희망이자 칸영화제의 새로운 총아로 우뚝 섰다. <카일리 블루스>(2015)는 그의 데뷔작으로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개봉 했다. 안개가 자욱한 도시 ‘카일리’와 조카를 찾아 떠난 ‘전위안’을 넘나들며 과거-현재-미래가 뒤엉킨 초현실적인 공존을 들려준다. 

 

도시 카일리는 감독의 고향이며 천성을 연기한 배우는 삼촌이며 어린 웨이웨이 역은 이복동생, 할머니 의사도 비전문 배우다. 89년생 젊은 감독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든 내공 있는 연출과 비범한 탄생이다.

 

느슨하게 교차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가족 장례식에 얽힌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 답한 봉준호 감독처럼. 비간 감독 또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영화에 응축했다. 데이비드 린치, 허우 샤오시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가 떠오른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경계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며 비이상적인 것들이 모여 있다. 기차, 오토바이, 차를 통해 이동하는 장면이 많다. 어딘가를 가긴 가는데 어디인지 모르겠고, 계속 가긴 하는데 끝이 날 거 같지 않고 아득하다. 급기야 길을 순행을 넘어서 역행으로 가기도 한다. 

 

시간과 기억, 꿈과 현실, 과거의 현재, 존재와 죽음을 향한 비간 감독만의 독창성이 담겨 있다. 끊임없이 ‘원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서 과거를 털어버리고 현재를 살아가길 말한다. 미스터리함과 기묘함, 스릴까지 전해지는 맥거핀으로 훌륭하게 작용한다.


영화 <카일리 블루스> 스틸컷

굳이 설명하자면 조카를 찾고 진료소의 노인에게 부탁받은 옛 연인과의 물건을 전달하러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이다. 줄거리를 정리하기는 힘든 비선형적 구조면서도 1부와 2부가 나뉜 다른 영화를 붙여 놓은 것 같다.

 

탕웨이의 녹색 원피스가 인상적이었던 <지구 최후의 밤>에서도 선보인 몽환적인 롱테이크의 전신이 담겨 있다. 조금 차이점이 있는데 <지구 최후의 밤>은 주로 밤을 활용했다면 <카일리 블루스>는 대부분 낮이다. 

 41분 동안의 롱테이크 장면은 신비로움을 넘어선다. 어떻게 촬영했을까 궁금해지는 방식이 영화를 더욱 영화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자주 시를 읊는데 간결한 언어로 함축적 의미를 전당하는 추상적인 언어가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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