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크리처 좀비의 변주가 반가운 영화 <좀비 사용 설명서>는 색다른 이야기로 초록의 자연 친화적인 좀비를 만들어 냈다. 정체불명의 좀비에게 감염되면 초록 눈과 초록피를 흘리며 몸에서 풀이 자라나는 이상 반응을 보인다.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사람을 물어뜯기 바쁘지만 마치 폐허가 된 곳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식물처럼 종국에는 고요하게 자연의 일부가 된다.
물과 친화적인 광합성 즐기는 좀비? 골 때리는 생각을 한 줄리엔 크나포 감독은 [워킹 데드]와 [기묘한 이야기] 제작진과 의기투합해 제25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 캐나다영화 관객상, 2022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에서 3개 부문(분장상, 사운드믹싱상, 시각효과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저력을 입증했다.
좀비 떼에서 살아남는 극한방법
영화 <좀비 사용 설명서> 스틸컷
캐나다 퀘백 공작섬에서는 일 년 내내 골프장을 찾는 고객을 위해 인조 잔디를 깔았다. 겨울에도 푸른 잔디 가득한 필드를 원하는 부자들을 위해 M 생명 공학은 유전자 변형 비료를 설원에 뿌려 골프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모종의 이유로 비료가 수도관으로 방출되어 공작섬 주민들의 생활 수도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의심 없이 물을 마셨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공격적 성향으로 변해가고 이상행동을 보인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공작섬을 봉쇄하기에 이르고, 좀비 떼와 섬에 갇힌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한편, 엄마마저 좀비로 변한 안드레는 동생 애니를 품에 안고 살기 위에 뛰쳐나오다, 좀비가 된 딸 패트리샤의 해독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경비원 댄과 합류해 탈출을 시도한다.
좀비도 광합성을 해야 해!
영화 <좀비 사용 설명서> 스틸컷
영화는 좀비가 창궐한 상황에 해맑은 아기의 출현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아기를 키워봤다면 뭐든 입으로 집어넣고, 기어서 어디든 돌아다니고, 호기심으로 인해 위험천만한 상황에 부딪히는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아기의 습성을 반영해 상황의 쫀득함을 키우고, 심각한 상황 속 시선을 강탈해 블랙 코미디의 묘미도 더한다.
그밖에 얼굴에 따개비가 자라는 좀비, 물속에서 잠수하고 있는 좀비, 광합성을 즐기는 좀비, 몸에서 식물이 자라는 좀비 등 기상천외한 좀비가 등장한다. 좀비란 언데드다. 즉 죽지 않는 기이한 상황을 말하지만 줄리엔 크나포 감독은 식물성 좀비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좀비 영역을 새 장르를 개척했다.
결국, 때아닌 좀비 출현은 자연을 거스른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자본주의의 광기를 집약한 섬, 여전한 인종 및 계급 차별을 향한 냉소, 디지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대 갈등과 협력 등. 전 세계가 얼마 전 겪었던 팬데믹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정보가 부족한 초기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봉쇄했던 일화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사람들과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들에 관한 따스함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