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는 사이>는 세입자 간의 다툼이 핑크빛 로맨스로 피어나는 신선한 소재가 눈에 띄는 영화다. 프랑스 영화 <최악의 이웃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리메이크했다. 벽 사이를 두고 집과 집 사이에서 동고동락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서 펼쳐진다. 원작의 시대와 정서를 수정하고 MZ 세대의 꿈과 연애에 초점을 맞춰 공감 갈 상황을 연출했다.
한승연과 이지훈은 실제 동갑내기로 실제 연인 같은 완벽한 호흡을 선보인다. 한승연은 귀여움 속에 내재된 마음의 아픔을 라니 캐릭터에 녹여냈고, 이지훈은 허당인 듯 보여도 특유의 사려 깊은 목소리로 안정을 이끄는 승진 역에 최적화되어있다. 서로 다른 성격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영화적 케미를 발산한다.
최근 '초롱이'로 큰 웃음을 주고 있는 고규필이 밴드의 멤버로 나와 신 스틸러의 면모를 발휘한다. 등장만으로도 벌써 웃음이 터지는 친근한 얼굴과 툭 던지는 대사까지 더해 대세임을 입증한다. 그밖에 김윤성, 이유준, 정애연, 임강성 등. 개성 있는 캐릭터가 한데 모여 영화의 완성도와 다채로운 매력을 더한다.
신개념 벽간 소음 플러팅
24시간 재택근무하는 라니(한승연)는 새로 이사 온 승진(이지훈)을 내쫓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방음이 1도 안되는 집인 줄 몰랐지만 어렵게 구한 집에서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이판사판이다. 승진은 밤낮없이 퍼붓는 라니의 방해 공작에 똘기 어린 (?) 방법을 동원해 응수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선 넘는 일이 생겨버린다. 급기야 사생활을 침범 받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피규어 아티스트인 라니와 뮤지션 지망생 승진은 목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나눠 쓰기로 합의한다. 하루 4시간씩 각자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기로 정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상하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을 때는 언제? 벽을 사이에 두고 고민 상담과 조언, 위로가 오고 간다.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목소리로만으로 소통했던 둘은 쌈에서 시작했지만 썸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끄럽던 음악 연습 소리는 어느새 자장가가 되고, 투닥거리던 윽박이 친근한 위로가 되어버렸다. 과연 투룸 같은 원룸에 사는 이들의 로맨스는 벽간 소음을 타고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옆집 사람과 동거 아닌 동거
영화는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란 상상을 현실로 옮겨왔다. 두 사람은 티키타카, 티격태격, 알콩달콩을 주고받으며 환상의 호흡을 선보인다. 방음이 전혀 안 돼, 서로의 숨소리까지 공유하게 된 옆집 사람의 일상이 설렘이 되는 독특한 소재가 포인트다.
둘의 오작교가 되어주는 건 오히려 '벽'이다. 단절을 의미하는 벽이 소통이 되어주는 기막힌 변주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소리에 짜증 나고 화가 치밀다가 호기심과 관심이 되어버리는 설렘. 박 터지게 싸우다가 미운 정 들어버린 상황이다. 또한 팬데믹을 겪었던 우리 모두의 DNA에 새겨져 있을 비대면, 공간의 소중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장연도 인상적이다.
N포 세대들의 고민이 담긴 영화답게 '꿈'과 '집'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대안이 떠오른다. "애정을 가지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거야", "꿈이라는 거.. 꼭 이루지 않더라도 그저 그 기분만 남겨도 충분해" 등.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며, 쉬어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던진다.
죽도록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답답한 현실, 한 스푼 위로를 전하는 대사가 와닿는다. 꿈은 잡힐 듯 보이나 이내 사라져버려 신기루 같다. 허황된 것처럼 보여도 천천히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가 닿은 일생의 목표임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