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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Aug 15. 2021

손바닥만한 시 소설들, 손바닥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 소설 1,2를 읽고

*문학과 지성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독서했습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한 분량의 소설들이었던 '손바닥 소설'. 소설들은 길어봤자 10장을 넘기지 않았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먼저 읽어서일까. 모든 소설들이 겨울처럼 어딘가 따뜻하고 쓸쓸했다. 설명하는 글에서 이 소설집은 '시 소설'이라고 말하는 걸 먼저 읽었는데, 짧은 템포와 시적인 표현들, 그리고 야스나리 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시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나도 독서하며 내내 시가 생각났으니 그 표현말고는 이 소설집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시는 언제나 따뜻하고 쓸쓸한 영역이다. 나도 모르는 애틋함이 시를 읽을 때마다 피어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어딘가 있을 대상을 자꾸 생각해보게 하고 그리워하게 한다. 이 쓸쓸한 소설들도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야스나리는 어딘가 있을 대상들에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평소 읽던 소설들처럼 머리로 읽기보다는 시를 보는 마음으로 읽어야 했다. 이름이 지어졌다고 해서 대상이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속 마음에 담아두게 되고 대상을 찾아보게 한다. 소설보다, 시보다, 여운이 더 짙은 시 소설. 




아래의 글들은 독서하며 밑줄친 것들 중 일부이다. 시의 한 구절을 읽는 것처럼 마음에 쿵하고 닿았다. 그런 아름다운 구절이 이야기의 맥락과 함게 어우러지니 그 분위기를 더 풍부하게 했다.


태아의 마음에도 이 아기는 그 어느 누구도 닮아서는 안 된다는 그런 아픈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에 온 게 아닐까요. 또한 얼굴이 그 어느 누군가를 닮게 되기 전에 죽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요. (신의 뼈)
이처럼 인간이란 죽은 자에게 예배할 작정으로 산 자에게 예배하는 경우가 있고, 또한 산 자를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그 그림자에 죽은 자가 있기도 한 거지. (영구차)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싸늘히 식어버렸다고 겉으로는 체념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녀의 감정 어딘가에 나를 위한 한 방울이 있으려니 하면서 실제의 그녀와는 무관하게 오직 나 자신 제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다. (불을 향해 가는 그녀)
인간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신은 있다)




일본 소설이고, 또 시대도 조금 달라서 완벽히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들이 이 소설을 더 신비하게 만들어주었고, 더 시적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밤마다 이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잔잔한 이야기를 들으며 잠에 드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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