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잭 니콜슨, 다이앤 키튼, 키아누 리브스의,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원제: Something's gotta give)이란 아주 잔잔하기 그지없는 로맨틱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닥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그래도 멜로는 어쩌면 나에게 마치 XL 사이즈의 옷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키아누 리브스의 포스가 초라해질만큼,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 이 두 중년의 사랑이 은은히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 앞에 놓여진 원목안락의자 위의 보들한 수공스웨터처럼 마냥 포근하기만 했다.
원제가 왜 저렇게 번역 되었는지, 번역가의 센스적인 센스라고 봐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주제를 생각하면서 이 영화가 문득 '떠올랐음' 이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스스로 버려야 할 것들이 있음은 물론일테지만, 내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잃어버린 것들도 있는 듯 하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는 그닥 계산적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었다. 계산을 했다면, 언제 감동 타이밍을 주어야 할 지, 어떤 방법으로 놀래켜 줄 지, 즐거움을 줄 지 셈을 헤아렸다.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호감은 갖고 있는지, 이렇게 하면 날 더 좋아해 줄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그저 내 앞에서 웃고,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보람을 느끼는 방법이었다.
지금의 나는 겁을 먹고 있다. 지구력은 떨어진 지 오래다. 밀고 당기며 눈치를 보고 펼치는 두뇌게임처럼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호감은 갖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사랑 앞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자, 방법이 되어버렸다. 날 쳐다보지도 않는데 더 이상의 구애는 없는 것이다. 익은 감이 밑으로 떨어지길 바라는 것 같은 멍청히 기다리는 일은 하기 싫어졌다. 더구나 처음엔 무관심했던 그 사람이 점점 날 좋아하게 만드는 그 가상한 노력이란 순정만화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라고..
나한테 호감 있어? 그럼 좋아. 나한테 관심 없어? 그럼 나도 관심 없어. 이분법적으로 표현하면 웃기지만, 사랑에 관한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뭐 약간 이런 식이다. 자존심을 되찾아 애절함을 잃고, 사랑에 방어적이 되어버린 나는 참을성을 잃어버렸고, 순정만화같은 사랑에 도전하려는 열정을 잃어버렸다.
이런 변화가, 이런 잃음이 내가 그동안 사랑을 하면서 얻지는 못할 망정, 잃어버린 것들이라면 실로 아까운게 아닌가. 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