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고도 400m가 아닌 - 400m
염도가 너무 높아 생물이 살 수 없어서 사해일까.
아주 옛날엔 바다였는데,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에 갇힌 호수로 변해버려서 사해인 걸까.
암만을 벗어나, 남쪽으로 달려가니 금세 우리만의 세상이 된 듯했다.
오가는 차는 드물었고, 그저 영화의 주인공처럼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의식이라도 된 듯, 차를 타고 점점점 내려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얼마간은 그저 암만이라는 산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면,
이후에는 뭔가 지하로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다가 정말 생뚱맞게도(?) 허허벌판 옆에 서 있는 해발 0m 지점 안내판을 보게 되었는데,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을 정도로 허술했다.
우리나라가 만약 사해를 품었다면, 이 곳 해발 0m 지점을 아담한 관광지로라도 꾸미지 않았을까.
충분히 의미 있는 지점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지 비석의 페인트 칠은 많이 벗겨져 있고, 친절하게 현재 위치와 지중해, 사해를 설명하는
안내판은 투박하고도 흙더미 앞에 무성의하게 세워진 것이 꼭, 어느 공사장 안내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어쨌든 정확히 이 곳으로부터 390m를 더 밑으로 내려가면 사해에 몸을 띄울 수 있나 보다.
그리고 사해는 앞으로 18km 남았단다.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그 18km도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날이 점점 어둑해지자 주위는 더욱 고요해지고, 가녀린 가로등 불빛이 겨우 드문드문 길 위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자못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그렇게 하늘엔 영화 <베티 블루 37.2>의 포스터가 그려졌다.
저 멀리 아직은 실감할 수 없는 사해의 물줄기가 보였다.
그리고 석양은 사해 건너 이스라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사해가 무척 길게 뻗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해의 물줄기를 따라 한참을 남쪽으로 달렸는데도 끝자락은 보이지 않았다.
예약된 숙소에 다다랐을 땐, 이미 컴컴해져 사해는 볼 수 없었다.
사해도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요르단과 이스라엘 모두 사해를 따라 수많은 리조트가 줄지어 있다.
그중 사해 프라이빗 비치와 야외수영장을 갖춘 꽤 괜찮은 리조트를 예약하여 갔는데,
나는 숙소 예약 당시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요르단도 눈이 내리는 겨울이다. 뜨거운 사막이라고 착각을 했었나.
투숙객마저 열 명이 채 안되어 보이는 휑한 리조트였다.

그나마 룸컨디션은 매우 좋았다.
여행 첫날이라서 더 피곤한 느낌이었지만, 숙소가 편안해서 다행이었다.
와이파이 또한 빵빵해서 가족들과의 안부는 물론 다음 숙소 예약까지 완료하고 잠들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당연히 로비 데스크에 사해 프라이빗 비치 이용 문의를 했다.
그러나 난색을 표하는 직원. 기온이 쌀쌀해서 비치 이용이 불가하단다.

아니, 그럼 내가 무엇하러 프라이빗 비치를 보유한 리조트에 굳이 예약을 했단 말인가.
그때부터 자초지종 설명을 한다.
일단 허니문 여행이고, 사해를 경험하러 한국에서 이곳까지 왔다는 둥 조금은 과장하여 말을 보태니,
고민하던 직원은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하더니, "OK"라는 말을 해준다.

대신 사해에 들어가지는 말고, 앞에서만 구경하라고 주의를 주는데,
'그래, 알았어. 일단 가보기나 하자고.'의 심정으로 차에 올라탄다.
원래 리조트에서는 매일 주기적으로 프라이빗 비치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이 겨울에 투숙객도 없는데 셔틀버스를 운행할리는 만무하고,
덕분에 직원용 승용차로 기사를 고용한 것 마냥 대접을 받았다.
사해의 아침이 밝았고, 양 옆으로 펼쳐진 백사장이 겨울 느낌으로 조금은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드디어 이곳이 해발고도 -400m의 사해다!
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잔잔한 물결이 이는 겨울 호수 인상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둘은 서로 표현은 안 했지만, 조금 허탈 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대로 눈에만 담고 돌아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와이프와 눈빛을 교환한 다음, 차에 타고 있는 리조트 직원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거짓말을 했다.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단지 사진만 찍겠다며 안심을 시켜놓고, 다시 돌아와 사해 앞에 섰다.
차량 좌석을 반쯤 눕혀놓은 심드렁한 직원이 이 날씨에 가능하겠냐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나는 추위에 떨면서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영하 가까이 떨어진 날씨는 정말 매서웠다. 사해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더 살을 에는 것 같았다.
미리 바지 속에 준비한 수영복은 예상치 못했을 거다.
나는 재빨리 상의와 바지를 벗고 잔잔한 사해로 걸어 들어갔다.
물은 이상하리만치 맑고,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아름다움과 공포심이 공존했다.
발목까지 들어간 상태에서는 모든 생물에게 잔인하다는 그 살인적인 염도를 느낄 수 없었지만,
무릎 위까지 들어가자, 며칠 전 상처가 났던 무릎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춥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저 멀리 직원에게 찌푸린 인상은 보여줄 수 없었다.
오히려 사해의 온도는 미온수처럼 따뜻하기까지 해서, 얼른 몸을 담그고 싶을 정도였다.
신기하고도 오묘했다.
사해 위에 아무도 없었다.
나, 그리고 바다, 저 건너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이스라엘.
그 뿐이었다.
그냥 물에 뜨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부력이 내 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해의 소금들.
사해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면 치명적이라고도 했다.
그 두려움에 사해에 쉽사리 몸을 맡기고 누울 수가 없었다.
허우적대다가 눈에 물이 들어가 그 말 또한 실감할 수가 있었다.

두세 번의 시도 끝에 나는 사해 한가운데 뜰 수 있었다.
그리고 소중히 가져간 요르단 여행책을 급하게 와이프에게 건네 받아 편한 마음으로 한 페이지를 읽었다.
실험 결과, 사해에서는 실제 독서가 가능했다.
그러나 난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사해의 따뜻함이 추위를 녹이면서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눈에 들어간 소금물을 빨리 씻어내야 했다.
차에 있던 생수로 화끈거리는 눈을 씻어내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와 마무리를 했다.
수많은 피서객과 함께 사해를 둥둥 떠다니며 망중한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나는 2013년 겨울 사해 그 곳에 떠있었다.
이제 고대 왕국 페트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