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4. 타필라 지역(Tafilah)

페트라 가는 길

by 클루 clou

남쪽인 이집트에서 시나이반도를 거쳐 요르단으로 들어와 페트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북쪽인 암만에서 페트라로 가는 길이다.

jordan-map (1).jpg 찻길이 단순한 요르단 지도

사실, 신혼여행으로 가는 요르단을 가이드 없이 렌터카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은 건 지도 때문이었다.

위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르단은 암만과 주요 도시 중심지역을 빼고는 교통 인프라가 매우 단순하다.

주요 관광지인 마다바, 카락성, 페트라, 와디럼 모두 King's highway라는 '왕의 대로'에서 갈라지며,

그 끝엔 홍해를 마주하는 아카바가 자리 잡고 있다. (지도상에서 가장 붉은 선)

당연히 암만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다고 하면, 왕의 대로를 따라 마다바 - 카락성 - 페트라 - 와디럼 순.

무수한 블로거들과 여행책자 또한 요르단 여행을 그렇게 안내하고 있다.

적절한 시간 분배와 효율적인 여행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혼여행 중이 아니었던가.

우리만의 길로 페트라를 찾아간다.

시간은 두배쯤 걸려도 괜찮다.

사진과 인터넷 정보에서 보지 못한 풍경을 담고 간다.

위험천만한 모험은 아니다.

왕의 대로가 평지 위에 잘 뻗은 고속도로라면,

우리가 선택한 길은 구불구불한 국도라고 보면 된다.


타필라 지역이다.


사해를 옆에 두고 달리는 끝없는 해안도로가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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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보면 그렇지 않은가.

환상적으로 달리다가 중간에 끊기는 정말 싫다.

사해 너머 아스라이 신비로운 이스라엘 대륙도 끝없이 이어져 우리의 여행을 함께 축복해주는 것만 같았다.

일반적인 루트대로 카락성을 가려면 사해의 끝이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우리만의 세상,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와이프도 분위기에 동조했다.

환호성을 지르며 우린 오로지 직진이었다.

한참을 직진하다 보니 예정대로 사해 꼬리를 보게 되었고,

DSC_3156.JPG 사해 꼬리에 자리잡은 마을

그 끝에 몹시 푸르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만에 정화되는 시각적 감상이었던가.

요르단에 도착하고나서부터 줄곧 고운 모래빛, 거친 바위에 시선을 빼앗겨 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어느 여행 책자에서 작가가 그랬던 것 같다.

사진 작가인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살려, 요르단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더니 그렇게 좋아했더란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어, 훗날 다시 요르단을 찾게 될 때 그 아이들에게 사진을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 또한 그런 막연한 기다림을 기대하며, 한국에서 가져간 것이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그리고 그 사해 꼬리에 자리 잡은 마을 어귀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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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3159.JPG 토마토와 감자를 수확하는 마을 주민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사진 촬영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히잡처럼 얼굴을 가린 소녀들도 처음에는 수줍어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시종일관 친절함을 보여줬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다.

그저 바디랭귀지가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는 아이들을 독사진으로 찍어 사진을 건네주고,

그들은 토마토를 한 움큼 쥐어주며 여행 잘 하라는 듯 우리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치 한 가지 임무를 완수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토마토는 한없이 달콤했다.


이제 방향을 틀어 타필라 지역을 관통해 페트라로 가는 길만 남았다.

계속해서 이스라엘 국경을 따라 직진만 한다면, 페트라로 오기 위해 다시 유턴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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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는 길.

1시간을 달려도 우리 말고는 사람 한 명, 차 한 대 볼 수 없는 미지의 길.

바위산을 거침없이 깎아내어 만든 길은 왜 만들어 놓은 걸까.

여기가 진정 우리의 세상.


산길은 예상보다 더욱 험준했다.

사해 지역에서 다시 해발 0m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해도, 끊임없이 오르기만 했다.

DSC_3177.JPG 타필라 지역 관통하는 중

그렇게 바위산 정상에 올라서면 이제 끝일 것만 같았다.

뒤로는 우리가 올라온 길로 가슴 뻥 뚫리듯 후련하게 보상받고,

눈 앞에는 마을이 보이고 길이 여러 갈래가 되고, 사람 구경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산 정상에서도 두 시간 이상 길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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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다가 불쑥 마안 지역의 페트라 마을인 와디무사(Wadi Musa)가 나오는 걸까.

그것도 아니었다.

DSC_3180.JPG 타필라 지역의 어느 마을

마을은 마을인데, 아직 타필라 지역 한 가운데였다.

문득 불안해졌다. 이러다 길을 잃고 헤매는 건 아닐까.

와디무사까지 가지 못하고, 어디 길가에서 비박을 하는 건 아닐까.

'신혼여행이다. 집중하자. 와이프를 위해 달리자.'

sticker sticker

속력을 더욱 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영어가 안 통하는 현지인들을 만나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와디무사' 방향을 잡아갔다.

DSC_3181.JPG 와디무사에 당도하기 전 찍은 마지막 타필라 지역 사진

쉬지 않고 달렸다면, 분명 더 빨리 도착했다.

그러나 한 고개를 넘고 나면 계속해서 드러나는 타필라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에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하고 나니 조급해져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달리는 차 안에서만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 감상에 만족하고,

줄기차게 내달렸던 것이다.


사해 리조트에서 나와 대략 7시간이 걸린 걸까.

우리는 드디어 페트라의 마을 와디무사에 도착했다.


호텔은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이틀을 지내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른 저녁 마을 시장에서 장도 보고, 요르단 전통 음식 양고기도 먹어보고,

작디 작은 번화가 한 바퀴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DSC_3185.JPG 호텔방에서 바라본 와디무사 야경

다음날 새벽부터 페트라 여행을 해야 하므로 일찍 잠들기로 했다.

장시간 운전으로 분명 고단한 하루였다.

그러나 잠들기 전까지, 우리가 지나왔던 타필라 지역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