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의 가족여행
어렸을 때 많이 못 먹어본 사람이, 커서 먹을 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설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많이 못 입어본 사람이, 어른이 되면 유난히 패션에 애착을 가질만도 하다.

먹고 싶은 것 못 먹는 것이, 입고 싶은 것 못 입는 것이 얼마나 한(恨)이 되면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여행을 이토록 좋아하고, 열광하는 데에는 위와 같은 한(恨)도 한 몫 했으리라..
20년하고도 8년이 더 지났다.
1988년 여름,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서해안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다녀온 것이 내 가족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기억도 드문드문 날만큼 오래전 일이다.
대머리 친척 아저씨의 흰색 대형 봉고차를 타고 갔던 것,
부모님께 생떼를 써서 내게 커다란 튜브를 사주셨던 것,
아버지가 두더지게임에서 현란한 속도로 만점을 받으신 것,
형이 다이빙을 하다가 바위 굴껍질에 배를 쓸려 흉터가 생긴 것,
어린이들끼리 사슴조형물 앞에서 돈내고 사진 찍은 것.
여행의 설레임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그저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단 한번뿐인 가족여행.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다.
생업에 종사하시던 부모님, 9살 터울인 큰누나와 나.
늘 부모님 중 한 분이 일을 하셨거나, 내가 이제 따라다닐만 하자 큰누나는 이미 사회인이 되어버렸다.
환경이 환경이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하고 이해가 아니라 그냥 그런가부다 여겼던 시절.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다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그땐 그러셨겠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된다.
부모님, 큰누나, 작은누나, 형, 그리고 막내인 나까지 6명이니까 그래도 제법 많았던 우리 가족은 28년이 지난 2016년 지금 16명으로 늘어났다. 가족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 가족여행도 점점 요원해졌다.
부모님을 제외하고서라도, 사업하는 사람, 직장다니는 사람, 입시 준비하는 사람, 뒷바라지 하는 사람, 육아에 지친 사람, 엄마 지치게 하는 아기 등등 16명 각자의 포지션이 너무나 복잡하게도 난립한 상황.

그러나 해법은 의외인 곳에서 나왔다.
아.버.지
겉모습은 변해도 속모습은 절대 변할것 같지 않던 아버지.
고희를 넘기시고 확실히 유연해지셨는지, 작년 추석 즈음 27년만에 처음 가족여행을 입밖으로 내셨다.
설령 가족여행이 이대로 어그러진다 한들, 아버지께서 그동안 가족여행을 염두해두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가족들에게는 '사건'이었다.
나는 그때 재차 누나들과 형에게 진의를 확인했었다.
그래서 여행을 실제로 가게 된다면, 아버지께 조심스레 묻고는 싶다.
아... 가족여행.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가족여행은 누나들도 포함된,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우리 여섯 식구의 가족 16명 전원이 포함된 여행이었다. 친척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이 아닌, 진짜 우리 가족만 떠나는 대규모 가족여행.
물론 여기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금이 있다.

아버지의 가족여행 발언이 도화선이었다면, 아버지의 후원금은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규모 가족여행에 모든 구성원이 너무나 쉽게 일사천리로 OK를 외쳤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28년만의 여행이 28초처럼 그렇게 의견은 쏜살같이 모아졌다.
이제 우린 장소를 정하고, 날짜를 정해서 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가족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