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1990년대 후반, 클루의 고등학교 시절,
혈기왕성한 10대가 이것저것 허세는 부리고 싶은데, 허세인지 객기인지 분간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기억하건대,
당시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계에 꽤 많은 수작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풍노도 남고생에게 영화감상이란 오로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액션이나 블록버스터
장르만이 유일하게 인정받는 컨텐츠였다.
극장 영화보다 비디오가 더 어울리던 시절, 일요일 저녁은 언제나 비디오 테이프 반납하러 가는 시간이었고,
다음날이 되면 친구들끼리 누구의 액션이 더 좋았는지, 더 폼나는지 언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것이 메인 스트림이었다. 이른 바, 액션과 블록버스터가 그 시대의 주류였고, 그 외의 장르물을 본다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그대로 비주류가 되었다.
욕심많은 클루는 주류에 속해 있으면서, 뭔가 허세를 부리고 싶었는지 나름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는 공부에 더 집중해야할 시기였는데, 유난히 영화를 많이 탐닉했던 시기였다.
<굿윌헌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위대한 유산>, <제8요일>, <키스 더 걸>, <인생은 아름다워> 등등.
좋은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들 중에는 고등학생이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가 있을 수 있다.
영화 줄거리만 따라가기에도 벅찬데, 영화가 내포한 함축적 의미를 발견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경험해보지 못한 연령대와 사회적 지위, 여태껏 가져보지 못한 감정을 공감한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중년의 사랑을 그린 잭 니콜슨, 헬렌 헌트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들의 열연이 주옥같은 명품 연기라는 것을 풋내기 고등학생이 어찌 알고 봤겠는가.
그저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가 나오고, 그 해 아카데미 상 많이 탔다니까 그냥 본 거겠지.
훗날, 클루는 이 감정을 가져본다.
"신기하다. 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나는 좋지도 나쁘지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인데, 너를 알고 너를 만나고 나니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너 한테만일까. 너 앞에서만일까. 몰라.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
정말로 신기했다. 그때 뭔가 기시감이 느껴진 것이다.
이건 분명 누굴 좋아하는 사랑의 감정인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은 뭘까.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잭 니콜슨의 수줍은 듯 하면서도 덤덤한 고백이 생각난다.
그래, 분명 고등학교 때도 무척 인상깊었던 장면이었나 보다, 비록 18살이었지만.
얼마나 인상적이었냐면,
다시 한번 기억하건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앞에 두고 칭찬하는 장면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수차례 일시정지, 되감기를 돌려가며,
번역된 대사를 노트에 일일이 적은 기억이 난다.
무언가를 적는다는 건 간직하고 싶었던 거겠지.
많은 대사 가운데, 이 한마디는 어느 구구절절한 사랑 고백보다도 눈부시다.
그리고 지금껏 회자되는 명대사가 되었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마음속에 누군가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 있다면,
지금도 유효하다.
클루도 현재진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