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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clou Apr 21. 2017

아내에게 쓰는 편지 : 엄마가 된 당신

미안하다, 고맙다.

싱금씨!

지난번 당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편지에 넣을 사진을 찾아봤더니 당신 사진이 없다.  

뭔가 당황스럽고 당신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미련스럽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어.

연애할 때는 그래도 어디 다니면서 같이 사진도 많이 찍고, 심심찮게 당신 셀피도 구경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당신 옆에는 항상 임둥이가 있더라. 

글쓰기를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새삼 깨닫게 되었지.


당신, 엄마가 되었구나..


어느 엄마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당신 역시 오로지 아이 사진과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 뿐.

당신 혼자 트레이드마크인 V자를 그리거나, 혼자 싱그럽게 웃고 있는 사진을 찾기가 이리도 힘들 줄이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지, 당신의 놀라운 변화를.


도도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새침데기 같았던 첫인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온 발자취.

또래 친구들처럼 결혼과 출산에 대해 무관심했던 가치관.

심지어 우린 아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었잖아.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 엄마가 된 당신을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었지. 

우린 언제쯤 가족 계획을 세워야 할까. 싱금이와 내가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믿음직하고 책임감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결혼이 현실화 되면서, 이런 생각들을 종종 했던 것 같아.

예비신랑의 당연한 걱정이었겠지? 

그래서 어느덧 아이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된 지금이 참 신기하기만 해.

때때로 지치고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부모로서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거겠지?ㅎ


뜬금 없겠지만, 당신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내 아를 낳아도~" 식의 가부장적 사고처럼, 그저 내 아이의 엄마가 되줘서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이 결혼 전까지 살아왔던 싱금이 자체의 예전 모습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위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역할로 새롭게 살아간다는 것. 


그건 용기이자 희생이라고 생각해. 

당신의 그런 모습에 미안하고 고마워.


어느 엄마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싱금이가 엄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건 클루에게 대단한 사건이니까. 

주중 하루의 일과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매일 부족한 잠을 주말에 보상받고 싶어하는 것.

가끔씩 백화점에 가도 아이옷 먼저 생각하는 것.

억척스러운 것 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마치 불가산 명사처럼 셀수 없이 많은 것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 모습에 짠할 때가 많아.  


하지만 기억해. 

당신은 클루에게만큼은 '누구 엄마'가 아닌 그냥 싱금이라는 거.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 낮잠을 재우고, 혼자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싱금씨!

철없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클루에겐 여전히 당신의 점심이 아이의 낮잠보다 소중하오.    


끼니 거르지 말고, 꼭꼭 챙겨 먹고.     

주말엔 감옥에서 꺼내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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