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루 clou May 24. 2017

아내에게 쓰는 편지 : 생일 축하해!

생일축하편지

싱금씨!

생일 축하해!  

생일만큼은 손편지 써주고 싶었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요즘 이것저것 바쁘다 보니..

아.. 또 이렇게 말도 안되는 핑계를 찾고 있네.ㅎ

그나마 당신 생일이라서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어. 


그동안 늘 하던 얘기지만, 

난 내 생일에 대해서만큼은 무덤덤하잖아.  

어렸을때부터 케잌이나 선물은 바라지도 않았고, 미역국이나 얻어먹는걸로 족하다고.

그때마다 당신은 익살 가득한 표정으로 가족 문화의 차이라며 장난치곤 했는데,

클루 역시 그 점은 인정하기 때문에 당신이 생일을 정말정말 중요시 생각하는 것, 충분히 존중해줄거야.

당신이 가족 생일때마다 케잌은 물론, 촛불 켜고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고, 선물 주고 즐거워하는 모습 보면

실제로 참 많은 감정이 교차돼.  

부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ㅎ

 

그런데 특히 당신 생일이랑 내 생일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어. 

우리 연애할때 얘기했던거 같은데. 

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강의시간에 하신 말씀. 

"이놈들아. 너희 생일은 친구들이랑 술이나 퍼마시고 축하받을게 아니라,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이야. 이제부터라도 생일날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해." 

부끄럽지만, 그 이후로 한 두해 실천하고는 기억이 잘 안나. 

그러다가 당신 만나고 이듬해 당신 생일때 장모님께 꽃바구니 보냈었지. '싱금이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 생일때마다 늘 그렇게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

그래서 생일은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날이기도 해. 

너무 무거운 얘기를 했나.      

그 교수님이 우리 결혼식 주례를 봐주신 분이야.ㅎㅎ 


오늘 저녁, 우리는 한달 전에 미리 예약해둔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을 먹을거야. 

날씨도 좋고, 전망도 멋진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만, 

집에 계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어떠실까. 

결혼 전이었다면, 분명 그 자리엔 클루가 아니라 부모님이 계셨을텐데. 그치?

아쉽고 쓸쓸해 하실 수도 있잖아. 

잊지말고 꼭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 드리길 바라.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주는 조언이자, 올해의 생일선물이야. ㅋㅋ


농담이고, 진짜 선물은 추후 확인하도록 하자.ㅎ 

어쩌면 당신 때문에 생일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건지도 몰라.

열정을 쏟아붓고 싶지만 매번 평범하게 보내는거 미안하게 생각해.  

몇해 지나다 보면 언젠가 제대로 된 이벤트 보여줄 왕년의 클루로 돌아오지 않을까. 

 

싱금씨!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의 내 나이. 

이제 당신꺼네. 

우리 5살 차이, 5년 지난 지금.

20대를 넘어 30대로 왔지만,

생일이 꼭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로 슬픈 일은 아닌것 같아. 

아마 올해부터 당신은 조금은 더 5년 전의 클루를 수긍하게 되지 않을까.  

반대로 지금의 당신을 나는 조금씩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힌만큼, 

우리 사랑도 그렇게 여물어질거야.

진심으로 생일 축하하고, 이따 봐!  


-당신의 남편, 클루로부터.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에게 쓰는 편지 : 엄마가 된 당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