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7. 와디 럼(Wadi Rum)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나다.
와디 럼(Wadi Rum), 달의 계곡
이름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여행은 철저히 패키지 계약이다.
절대 혼자서 와디 럼을 헤집고 다닐 수 없다.
특별히 설치해놓은 울타리가 없어,
몰래 들어가더라도 그 붉은 빛 광야에서 낯선 차량이 그들에게 들키는 건, 바가지 속 바늘 찾기다.
결국 날고 긴다 한들, 와디 럼 입구 앞에 오밀조밀 모일뿐이다.
와디 럼은 그들의 전용 차량으로, 그들의 몇 가지 정해진 루트로 계약을 해야만 그 장엄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혼여행까지 와서 달려드는 호객꾼과 소모적인 흥정이 싫어,
페트라 호텔 주인에게 미리 부탁을 하였다.
다소 저렴한 대신에 정품 경로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와디 럼 입구가 아닌, 와디 럼 초입 어느 건물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접선하자는 것도,
접선 후 우리 차량을 와디 럼 주차장이 아닌, 저 멀리 떨어진 주유소 옆에 주차시키는 것도.
아무렴 좋다.
이 바닥이 다 그렇고 그렇듯 공생 관계 아니겠는가.
계약이야 어쨌든, 닥치고 그냥 제발 와디 럼을 가로질러 질주해달라.
우리 지금, 신혼여행 중이니까.
와디럼 가는 길은 처음으로 왕의 대로를 이용했다.
쭉쭉 뻗은 길이 어느 때보다 시원시원했다.
한 시간 정도 달려가자,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와디럼 지형이 군데군데 나타나는 듯했다.
와디럼 방향으로 꺾어지는 길가에서 차 옆에 세워두고 괜시리 히치하이킹 설정접선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녀석이 오늘의 풀 패키지 가이드 되겠다.
심드렁하게 코팅된 한 장 짜리 팸플릿을 보여주고, 여행 코스를 설명한다.
돈을 십만 원 이상 지불한 상황에서 50% 더 지불하면 더 좋은 코스로 길게 빼준다는데,
"됐다, 이 녀석아. 이미 이런 상황은 엉아 나라에서부터 학습하고 왔다."
혹시나 불쾌할까 봐, 카메라로 과정을 담지는 않았고,
이 녀석이 과연 어떤 개구멍(?)으로 와디 럼으로 잠복할까만 주시하고 있었다.
와디 럼의 또 다른 입구를 향해 질주하는 중아, 보인다. 저 멀리 로렌스 장군이 질주하던 와디 럼 광야.
트럭에서 탑승은 자유다.
내부 좌석에 앉아도 되고, 짐칸에 앉아 바람을 맞아도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사막 위의 계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앞은 미래, 뒤돌아 보면 과거
모래썰매 언덕붉은 사막을 질주하여 도착한 첫 번째 스팟.
이미 여러 명의 여행객들이 신난 듯 모래 썰매 체험 중이었다.
그늘 속 붉은 모래는 기분 좋게 차갑고, 맷돌로 갈은 듯 매우 곱다.
베두인이 대접하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낙타 가는 길을 따라 떠난다.
두 번째 도착한 스팟.
고대 베두인들의 벽화가 남아있다. 낙타 여러 마리와 알 수 없게 생긴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페트라에서 바위는 실컷 봤으니, 와디럼은 그냥 지나치면 안되냐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세번째 스팟 스몰 브릿지와디 럼 한복판을 휘젓고 다니다 보면, 이 곳이 지구가 맞나라는 착각이 든다.
외계 행성으로 분류되는 터키의 카파도키아가 디테일에서 귀여운 맛이 있다면,
요르단의 와디 럼은 스케일면에서 압도하는 웅장함이 있다.
다시 광야를 가로 질러,
로렌스의 골짜기로 들어갈 차례다.
네 번째 스팟은 실제 로렌스 장군의 거처로 쓰였던 골짜기.
요르단으로 오기 전 감상했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떠올랐다.
이 곳에서 그의 얼굴 조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바위 옆면에도 새겨져 있다.
숨을 수 없는 와디 럼에서 유일하게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특이한 구조의 골짜기.
골짜기를 마주보는 거대 암벽이 황량한 사막 위에서, 아늑한 느낌마저 준다.
그 앞에서 펼쳐지는 클루의 재롱잔치.
다시 한번 베두인의 차 대접.
가이드 녀석은 유치하게 이런 장난을 좋아한다.
장난 그만해라~
마지막 스팟으로 가야지.
바람이 만들어준 모래 물결 화폭에 소복히 아로 새긴 우리 둘 발자국.흔적은 곧 사라진다.
추억은 영원하다.
마지막 스팟에서 우리의 지프, 우리의 가이드. 불안했지만 고마웠다.
그런데 이 장난은 그만 둘 수 없니? 짜샤.
와디럼을 뒤로 해야 하는 시간이 온 걸까.
다시 한번 돌아봐도 좋다.
와디 럼, 알아줘.
우리 부부 이 곳에 왔었어.
낙타야 너도 얼른 돌아가.
우리도 이제 정말 돌아갈 시간이야.
와디 럼에서의 날이 점점 저물고 있다.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와디 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