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용기내도 괜찮아
내 생애 처음 파혼이라는 것을 겪고 써내려 간 연재글 <일단 멈춰서도 괜찮아> 이후로 벌써 꽉 찬 4년이 흘러갔네요. 그동안 브런치에도 저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많았습니다. 브런치의 경우, 책을 소비하는 사람은 적어졌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어가는 트렌드에 따라 브런치 작가가 되는 관문은 예전보다 더 높아진 듯하더라고요.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브런치는 매거진 및 출판의 기회를 늘려주고 다양한 인플루언서 작가 분들이 글을 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 2019년 7월부터 2022년 5월까지 3년간 온라인 인테리어 소품샵을 운영하였고, 2019년 12월부터는 4살짜리 푸들을 입양하여 개 엄마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되며 기존 연재글에 이어서 글을 쓸지, 새로운 제목의 연재글을 새롭게 써내려 갈지를 고민해 보았는데요.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어요. ’일단 멈춰서도 괜찮다’는 4년 전의 제목을 쓸 때의 내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요.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제목을 정한다면 어떤 제목을 지어주고 싶은지도요.
새 술은 새 포대에. 제 결론은 새로운 연재글의 시작입니다. 잘 쉬었니? 그럼 이제, 다시 용기내도 괜찮아. 세상에 부딪쳐 보자.
지금으로부터 4년 반 전, 저는 제 인생 계획에 없던 경로 이탈을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파혼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나중에 이혼을 하면 했지 꿈에도 엄두 내지 못했던 두려운 길이었고 가보지 못한 길이었어요. 마치 온 세상이 뒤틀리고 무너지고 심판대에 오른 것만 같은 끔찍한 기분!이었으면 차라리 드라마 속 비운의 주인공처럼 감상에 젖기라도 했을 텐데… 조용히 뱃속의 태아가 숨쉬기를 멈춘 것 같은, 진공처럼 차분한 절망감이랄까요. 생각보다 별 게 아닌데 또 별 게 아닌 건 또 아니라서(…) 난처하고, 파혼 후 PTSD를 극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매체 속 결혼 준비/결혼식 장면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가까운 지인의 청첩장을 받는다면 고민 없이 기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으며, 현재는 비혼주의자이지만 언젠가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슬쩍 열어 둘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파혼과 개인 사업, 강아지 육아 경험의 막강 조합으로 더 이상 어른이가 아닌 어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내 인생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고, 어떤 과감한 결정을 하든 그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고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떠밀려 가듯이 인생을 산다면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누구보다 처절하게 느껴봤으니까요.
20대에 군대 간 남자친구 기다리는 경험을 고무신에 빗대어, ‘고무신 굳이 하지 말라’고 하죠. 고무신 출신인 분들은 무슨 말인지 공감하실 텐데,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이긴 하지만 굳이 안 해도 좋을 마음 아픈 경험이거든요.
고무신과 파혼은 결이 전혀 다르지만 누가 나서서 권할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는 같아요.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해서 무용담 늘어놓듯이 “파혼,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겪어볼 만합니다”라고 절대 쉽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겪은 일도 아니고, 그저 어느 날 벌어진 사건이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로 인해 지금의 제가 더 단단해지고 멋진 사람이 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에요. 사람이 성장통을 느낄 때마다 정말 키가 큰다면, 못해도 3미터는 될 만큼 많이 아팠고 아픈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해야 한다면, 혹은 이미 벌어졌다면 최대한 그 시간을 잘 이겨내 보는 수밖에 없어요. 제 글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면 다행이고요.
사실은 말이에요. 저도 오늘 이 글을 다시 쓰기까지 용기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한번 경로 이탈을 한 이후로는 나비 효과처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염원했던 결혼과 평범한 가정 꾸리기에서 멀어졌고, 계속 아웃사이더처럼 이단자처럼 외롭게 느끼기도 했어요.
힘들면 일단 멈춰서도 괜찮다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올려 두고서 정작 나 자신은 현실적 어려움과 조바심에 치여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하고 사업을 시작했고, 그대로 3년을 끌고 갔어요. 누구보다 밝은 사람인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살았어요. 그렇게 멈춰 있지 못한 채 지내다가, ‘아,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고 공황 발작 증세를 몇 번 겪고서야 사업을 접고 휴식기에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사실은 말이에요. 조금은 더 쉬고 싶어요. 하지만 충분히 필요한 만큼 멈춰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지금까지 1년 넘게 온전히 휴식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천천히 용기 내어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의 앞으로의 여정을 지켜봐 주세요.
다들, 잘 지내시나요? 이제는 숨이 조금은 쉬어지는 일상 속에서 살고 계시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