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멈춰서도 괜찮아
너무 긴 시간을 일기 한 줄, 글 한 편 쓰지 않은 채 지냈다. 결혼 예정일에 나 홀로 여행도 떠나고, 그 뒤에 계획되었던 제주도 여행까지 잘 마치고 돌아오니 이제는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일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방 구석에 박혀 있다가 어떻게든 살아내 보겠다고 살풀이하듯 글을 써내려 가던 그 일상도, 삶의 무게 앞에서는 요령 없더라.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멈춰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머리를 지배했고, 그렇게 일에 빠져 사는 새 삶이 시작되었다.
‘삶’이란 단어가 얼마나 묵직한 단어인가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삶이란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이며 비릿한 데다가,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쉽게 부서져버리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출처 : 구병모, 한 스푼의 시간) 어쩌면 이렇게 적절하고도 정확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반숙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처럼 애매하게 익어 끈적거리는 그 인생을 좀더 ‘하드 보일드’ 하게 살아보고자 사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웬 사업이냐, 사업 아무나 하냐 싶겠지만 그 당시에 제일 관심 있었던 일이 중국 병행수입과 온라인 쇼핑몰이었고 상품기획자 출신의 백수가 시작할 수 있는 일 중에 비교적 저자본에 시작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스마트스토어 오픈일을 7월 3일로 정해 두고, 숱한 나날을 새벽 4시까지 일하거나 철야를 해가며 사업 준비에 매진하게 되며 글쓰기는 어느덧 뒷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 ‘아, 다음 편을 써야 하는데’ 하면서도 글을 쓰지 않고도 숨쉴 수 있을 만큼 내가 건강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언젠가 구체적으로 그 과정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이지만, 일단 결론만 두고 보자면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내 스토어는 오픈 7주차이고, 아직까지 대박도 쪽박도 아닌 지점에서 영업 중이다. 다행인 건 아직까지 별점 테러는 당하지 않았다는 것? ‘올해 파혼한 사람의 쇼핑몰입니다’ 라고는 말 못해서 ‘지치고 뾰족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컨셉을 내세웠는데 진정성이 조금은 전해졌는지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자체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5~7월로 돌아가 똑같이 살아보라고 하면 절레절레 할 정도로 빡빡한 나날을 보내고 나니 다시, 일상이다. 일상이라는 게 그렇다. 별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의 집합체. 그리고 조금은 지루할 지 몰라도 그 일상을 균형 있고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건 루틴(routine), 규칙적인 틀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 스마트스토어 발주 현황이나 네이버 광고 센터를 보지 않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결핍에서 오는 불균형과 불안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지금의 내 삶에는 루틴이 없다. 평일 오후 3시 전에 물류센터에 고객 발주서 접수하고 송장번호를 받아 고객들에게 배송 현황을 알게 해주는 것. 그 외에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매일 하는 일들도 모두 제각각이다.
얼마나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 내야, 평화롭고 균형 잡힌 일상이 도래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요즘 남들이 바라보는 ‘나’는 인생 바닥 찍고도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 실행력과 추진력을 갖춘 야무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우울한 감정에 잠식되어 아무 것도 못하는 하루가 여전히 꽤나 많고, 세상 서러움은 내가 다 짊어진 양 어린 애처럼 울 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기가 영원할 거라 믿지 않고,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기분 좋은 날은 기분 좋은 대로 최대한 감정의 흐름에 솔직하며, 더 이상 어딘가로 도피하지 않는 것. 그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때때로 사랑스럽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면 이 글을 읽으며 같이 힘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그대도 완벽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부족한 부분들과 삶의 결핍을 채워 나가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너무 오래 멈춰 서있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좀 더 단단해져 있을 거라는 것.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 멈춰 서있는 시간의 길이는 절대적이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이기적으로 자신의 기준에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반쯤 멀쩡해졌고, 반은 여전히 슬픔과 혼란 속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가끔씩 멈춰 서서 차분히 숨을 고른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보듬어 주어도, 아직 우리의 앞 날은 길고,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날들도 저 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조급해 하지만 않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계속-)
*덧 : 06회차 여행 이야기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돌아보며 다시 올릴 예정으로 비워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