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아이와의 비행, 시작은 이렇게

아참, 어른은 저 혼자요.

by 둥리지

첫째 아이의 방학 기간에 맞춰 한국에 들어왔던 엄마가 중국으로 돌아간 지 오늘로 사흘째다. 엄마를 공항버스 정류장에 내려 주는 날 아침의 슬픔과, 집으로 돌아와 종일 온몸으로 느끼는 헛헛함. 몇 번을 경험해도 매번 낯선 이 감정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헛헛한 마음이 꽤나 오래 간다. 종종거리며 주방을 누벼야 할 저녁 시간에도 통 힘이 나지를 않는다.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오전 시간을 그리워한 게 분명 며칠 전이었는데. 난 자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KakaoTalk_20250213_124141733.jpg 엄마를 내려 주고 집으로 가다가, 엄마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다시 달려온 정류장. 그곳에서 바라보는 버스의 뒤꽁무니. 추운 날이었던 만큼 맑고 푸른 하늘.


한 집에서 엄마와 나, 그리고 두 아이가 복작거리던 나날이 막을 내렸다. 아이는 유치원으로, 엄마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둘째 아이와 집에 남아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엄마 캐리어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몇몇 것들이 딸려 갔나 보다. 이를테면 집 안의 다정한 기운, 내복 입고 바닥을 뒹구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선과 같은 것들.


마음에 힘이 붙지 않는 건 계절 탓일까. 게다가 우리 집에는 나처럼 무력한 마음으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첫째 아이다. 할머니가 탄 비행기가 중국에 착륙하기도 전부터 할머니 만날 다음 방학까지 남은 날을 헤아리고 있는 이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럴 거면 내가 엄마를 보러 가 버릴까, 비행기로 고작 두 시간 거리인데.


틈날 때마다 항공권 예약 어플을 켜서 표를 확인한다. 밥 하다가도 스윽, 잠든 아이들 옆에서도 한번 스윽 어플을 켜 본다. 결제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몇 번이고 멈춰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승객 수에 있다.



“성인 1, 유아 1, 소아 1”


이 옵션에 부연 설명을 살포시 더해볼까. “어른 하나가 유치원생 한 명과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 한 명, 총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탑니다. 두 아이가 모두 남자아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 주세요.”


각오만으로 될 일인가 싶어 검색 엔진을 켜고 검색어를 요리조리 변주해 가며 유사한 사례를 찾아본다. 역시나, 글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과 비행을 마치고 영혼까지 탈탈 털려 글을 쓸 힘이 없었을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어 글을 쓰지 않았을까. 어른 둘에 아이 하나의 조합은 많고, 어른 하나에 아이 하나의 사례도 심심찮게 있는데. 어른 하나에 아이 둘이 비행한 사례는 도무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일 년 전에도 두 아이와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둘째 아이가 고작 생후 5개월, 아기띠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시절이었다. 제때 기저귀를 갈아주고 수유만 해 줘도 비행에 어려움이 없는 시기. 하지만 그때 아가는 무럭무럭 자라나 에너지와 자아를 가득 품은 인생 19개월 차가 되었다. 앉아 있는 것보다 걸어 다니는 게 좋고, 자는 것보다 노는 게 좋은, 우리와는 아주 많이 다른 생명체.


그런데 지금 안 가면 엄마를 언제 또 보나. 봄이면 아이들 새 학기라고 못 갈 테고, 여름에는 더워서 못 갈 테고, 가을에는 나의 복직이 예정되어 있어 가지 못할 테고, 겨울의 상해는 바람이 차니 아이들과 갈 엄두를 못 내겠지. 그래, 그럼 마음먹었을 때 가 보자. 대신 아이들이 덜 힘들게 비행할 방법을 잘 궁리해서 다녀오면 되겠지.


모래성 같은 다짐이 무너지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 떨리는 손으로 결제 버튼을 누른다.


결제 완료.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과 즐겁게 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티끌만 한 것이라도 싹싹 긁어모아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이렇게 결제한 티켓으로 저는 아이들과 2월 1일에 한국을 떠나 2월 10일에 무사 귀국했습니다.

다음 편에는 두 아이와의 비행을 준비한 과정과 비행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팁들을 풀어보려고 해요.

아이들과의 비행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비행하는 동안

제주항공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이착륙 시에 소아는 성인 보호자가 직접 안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요,

둘째 아이를 품 안에 안고 무사히 착륙하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죄송하고 또 부끄러워

먼저 떠나신 분들, 그리고 너무 짧은 시간 이 세상에 머물다 간 아이들을 떠올리며 명복을 빌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