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비행기 탈 때 유용한 팁 5가지
* 이 글은 이전 글인 <두 아이와의 비행, 시작은 이렇게>의 후속 글입니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갈까 말까, 언제 갈까를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방법만 고민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작된 나의 비행 준비기. 우리 아이들과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과 먼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많이 참고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재작년의 경험을 자주 떠올렸다. 그중 유의미했던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신나게 놀던 아이가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낮잠을 푹 잔다, 푹 자면서 체력이 충전된 아이와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에 묶여있어야 하는 아이는 오징어처럼 몸을 비틀어댄다, 그런 둘째 아이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쏙 나가 있는 나에게 첫째 아이가 슬며시 눈빛을 보낸다, 나도 좀 봐달라고. 그 슬픈 눈빛에 마음이 아릴 때쯤 눈에 들어오는 다른 승객들의 표정. 어린아이와 비행기를 타는 건 어른 욕심 아니냐고, 잘 좀 달래 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다.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함께 비행기에 오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공항으로 가는 차에서 아이가 잠들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겠다. 이후 비행기에서 낮잠을 자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니 하늘의 뜻에, 아니 기장님의 뜻에 맡기는 걸로.
그리하여 나는 오전 열한 시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일어나자마자 차를 타고 공항에 가면서 간단한 먹거리로 아침을 대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차에서 공항에서 에너지를 폴폴 발산한 아이들이 비행기에서 자 주면 좋겠다는 사심까지 듬뿍 넣었는데, 결과는 대성공.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두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둘째 아이가 낮잠을 쿨쿨 자 주었다. 기장님이 보우하사 우리 가족 만세.
일반적인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좌석으로는 빨리 내릴 수 있거나, 다리를 뻗을 공간적 여유가 있는 좌석이 있다. 취향에 따라 창가나 통로에 앉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비행하는 나는 반대의 길을 걷기로 한다. 비행기 뒤쪽 창문 없는 곳.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으면 아이들의 돌발 행동에 차분하게 대응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좋은 자리에 앉을 이유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4개월 미만 유아는 자리를 배정받지 못하는데(소아 금액 지불할 시 좌석 배정 가능), 옆자리가 비어 있을 경우 아이를 앉힐 수도 있어 비인기 좌석으로 자리를 고르는 것이 좋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짐 부칠 때와 비행기에 탑승한 후 우리 옆자리가 비어 있는지 확인을 부탁드리기도 했는데, 흔쾌히 확인해 주시고 아이를 앉혀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참고로 아이들과 처음 비행했던 해에는 둘째 아이가 5개월일 때라 배시넷을 사전에 신청했다. 기본적으로 배시넷은 설치할 수 있는 좌석이 정해져 있다. 우리가 타게 될 비행기는 그 자리가 가장 앞 열이라 비교적 넓은 공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배시넷을 신청했는데, 탑승하고 나니 팔걸이가 올라가지 않는 좌석이라 애를 먹었다. 첫째 아이가 나에게 기대거나 누울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이들과 비행기를 탈 때는 앞이 널찍한 것보다 팔걸이를 올릴 수 있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탑승할 비행기의 좌석 환경을 미리 검색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일어날 일을 머릿속에 찬찬히 떠올려보자. 동선을 그리다 보면 그에 맞는 준비물과 행동 강령이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나의 의식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이런 식이었다. 체크인 이후 출국 심사와 탑승 시 계속해서 여권을 꺼내야 하는데, 이때 버벅거리면 아이들이 이때다 싶어 튕겨나갈 게 뻔하다. 그러니 아이들과 내 여권을 파우치 하나에 넣은 뒤 내가 아는 위치에 넣어 둔다. 필요할 때마다 파우치를 바로바로 꺼내쓸 수 있도록. 또 하나, 활동의 자유를 위해 아이들과 내 겉옷은 부치는 짐에 넣어 보내기로 하자. 아이의 기저귀와 물티슈, 여벌 옷처럼 탑승 전에 필요한 물건과 간식, 놀잇감 등 기내에서 필요한 물건이 섞이지 않도록 지퍼백을 잘 활용해야겠다. 입국 카드를 작성할 때 필요한 숙소 정보를 미리 캡처해 두고 펜도 함께 챙겨두자.
주로 자기 전에 누워서 공항을 구석구석 떠올리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이거 챙기자, 요건 요렇게 넣어가면 편하겠다 하면서.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돌보며 비행기에 오르는 시간까지의 모든 일을 어느 정도 자동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빠짐없이, 효율적으로 짐을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면. 바로 기내에서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비장의 무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비행기 타고 상해 가는 길과 KTX 타고 대구 가는 길. 두 시간짜리 여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이들과 비행기를 타는 게 더 힘든 이유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착륙 시간과 연착 시간에 있다.
시간, 시간이 관건이다.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야 한다. 그날 처음 보는 장난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먹히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아이의 최애 영상까지.
여섯 살 첫째 아이와는 미리 마트를 한 바퀴 돌며 기내에서의 시간을 준비했다. 비행기에서 먹을 간식, 흥미로워 보이는 워크북, 사고 싶은 스티커를 바구니에 한가득 담았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도 하나 몰래 사 뒀다. ('몰래'가 포인트다!) 비행기에 타면 항공사에서 제공해 주는 아이들의 놀이 키트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첫째 아이의 두 시간은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겠지.
문제는 둘째 아이. "이거 사서 비행기에서 먹자!"라는 주문이 통하지 않을 만 1세의 아이.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내 입에 넣어다오 하며 자지러질 월령 안에 쏙 들어있는 둘째 아이. 그런 아이가 흥미로워할 것들을 찾기 위해 블로그를 탐방하며 정보를 모았다.
끼고 빼는 걸 좋아라 하는 아이에게 짜잔 하고 내밀 장난감. 그리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슉슉 돌아가는 신기한 간식통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간식통에는 뽀로로 얼굴이 그려진 크래커, 딸기칩과 사과칩, 동물 모양 과자를 넉넉히 담고 아이가 좋아하는 맛밤을 아낌없이 부어 넣었다. 결과는 대성공. 버튼을 누를 때마다 통이 돌아가는 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한참을 가지고 놀아주고 먹어준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40분 간의 출발 지연을 버텨낼 수 있었다.
영상의 힘을 살짝 빌리기도 했다. 유튜브의 ‘오프라인 저장’ 기능을 사용하면 비행기 안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기능이었지만, 어느 것도 통하지 않는 상황을 대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상 몇 개를 저장해 갔다. 기내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유아 전용 영상도 순간순간 유용했다. 하지만 이착륙 시에는 시청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항공사에 따라 기내 엔터테인먼트 목록을 제공한다고도 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참고: https://www.koreanair.com/plan-your-travel/in-flight-experience/entertainment)
내가 탑승했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출발 24시간 전까지 기내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의 메뉴 또한 선택 가능해 첫째 아이는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골라 신청했다.
두 아이의 식사를 나 혼자 돕기란 보통 일이 아니기에 내 식사라도 심플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오고 가는 비행에서 내가 선택한 메뉴는 바로 과일식. 차마 사진 찍을 시간이 없어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약 다섯 종류의 과일이 집어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되어 나온다. 가방에 넣어 두었다가 틈날 때 꺼내 먹을 수도 있고, 여차하면 아이들의 간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 (참고로 나는 수박 세 조각을 아이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2월에 만난 수박이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백팩을 꺼내 차곡차곡 짐도 쌌고, 머리 굴려 자리와 기내식도 선택했다면. 아이들이 좋아할 장난감과 간식도 아낌없이 준비했다면. 남은 퍼즐 조각은 아이들, 그리고 공항에서 마주칠 많은 어른들의 손에 양보하기로 하자.
고행의 시작이라며 내내 비장하게 굴어 대는 엄마와 달리, 경이감이 깃든 눈으로 공항과 비행기를 관찰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아이들을 속단하는 나의 납작한 마음과 달리, 아이들을 배려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많은 어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