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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리지 Nov 18. 2024

판단하는 마음, 내려놓지 마세요

오늘 같은 섣부른 판단, 앞으로도 자주 부탁할게 친구야.

아이 키우다 보면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너무 늦지 않게 연락해 봐.


  너와 나를 모두 아는 친구로부터 조언 아닌 조언을 들은 너는 나를 떠올리며 조금 미안했더랬지. 그와 동시에 너는 이런 생각도 했다고. 첫째, 네가 아는 나라면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느라 서운함에 묶여있을 틈이 없을 것이며 둘째, 무엇보다도 나라면 한발 늦은 너의 연락을 탓하지 않을 것이라고. 네가 함께했던 그 당시의 나라면 분명 그랬을 거라고.


  그렇지, 이래야 내 친구지. 너의 말은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어. 네 말처럼 나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싶은 욕심에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어. 아주 가끔, 동굴의 어둠을 쪼개는 빛 한 줄기처럼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무언가가 내 머리 위로 툭 하고 떨어지는 날이면, 한 번은 돌아가 보고픈 그 시절을 떠올리곤 했어. 참 바쁘고 열심이었던 너와 나의 대학 시절을.




  늘 종종거리며 걸어 다니던 캠퍼스, 공강 시간마다 누비던 학교 앞 식당과 카페, 무수히 많은 밤과 새벽을 반납해 가며 이루어낸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 여름에는 과방에서, 겨울에는 학교 앞 스타벅스 2층에서, 낮에는 빈 강의실에서, 밤에는 학교 앞 맥주집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을 기억해.


  그때의 너와 나를 떠올리면 참 좋은 것은, 너와 나는 늘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걷다가 우리의 어깨가 맞닿을 수 있을 때 함께 손잡고 그 길을 뛰었다는 사실 때문이야. 이십 대의 우정이 이렇게나 멋질 수 있다는 것, 그게 나에게는 일종의 자부심이기도 했던 것 같아.


  어쩌면 그 믿음이 있었기에 멈춰버린 시공간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크게 외롭지 않았나 봐. 너를 빼놓고는 나의 대학 생활을, 나의 이십 대를 도무지 논할 수가 없을 정도인데도 우리 사이의 공백이 나를 외롭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거기에 있어.


  그리고 참 좋았던 것 하나 더.

  누군가가 지난날의 나를 정확하게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면 너는 믿을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함부로 추측하는 건 어딘가 조심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몸을 사리던 내 태도는 틀렸어.

  나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내 힘이자 자산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밤이었어.


  그 밤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별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지만, 내 마음은 어딘가 꽉 차 있는 듯한 기분이야. 시시콜콜한 수다나 조금은 어색한 메시지로 우리의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게 참 재미있고 또 좋아. 너는 너의 위치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복닥거리며 살다가 어느 밤에 만나 또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가 아는 너라면 그렇게 잘 지내고 있을 줄 내 알았지, 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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