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옥 Dec 18. 2018

넷플릭스 중독을 영어실력으로 승화시키는 방법

넷플릭스 미드 슈츠(SUITS)로 5개월간 영어실력 업시키기 

지난 7월, 한 달 무료 프로모션을 계기로 넷플릭스의 세계에 입성했다. 한 달 동안 맛만 보고 나오자고 생각했는데 웬걸, 한 달 동안 두개 미드의 전 시즌을 완주해 버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웹브라우저든 스마트폰이든 디바이스를 가리지 않고 전환이 가능하니, 일상의 모든 조각시간이 넷플릭스로 모아졌다. 


그렇게 넷플릭스 중독자로 석 달을 보내니 슬슬 겁이 났다. 이러다 정말 소파에 붙어버린 감자처럼 넷플릭스에 갇히게 될까봐. 소설책도 안 읽는 내가 이렇게 스토리에 열중할 줄이야. 그것도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 드라마에. 그 변화가 신기하면서도 어찌나 무섭던지. 나는 두번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구독을 해지했다.


다행히 해지 후 다시 넷플릭스를 찾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스토리에 몰두해서 영어로 된 드라마를 애청하던 내 모습은 왠지 아쉬웠다. '이 열정을 영어 공부에 이용하면 어떨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전개도 빠르고 표현도 좋은 SUITS(슈츠)는 공부하기에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년에는 이 미드를 가지고 영어 스터디를 만들어보자.


2019년 2월부터 시작하는 영어 스터디 'SUITS'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2018년의 마지막 달, 나는 페이스북에 스터디 멤버들을 찾는 포스팅을 올렸다. 진행의 부담이 있긴 하지만, 나 역시 함께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Peer Pressure) 를 이용해서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SUITS 시즌 1 완공
격주 수요일 퇴근 후 3시간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간 총 10회
마지막회 포함 8회 이상 참석하면 회비의 80% 반환


페이스북에 올린 스터디그룹 모집 공고


회비가 일시불이라 일주일 정도는 공지하려 했는데, 내가 페이스북 친구들을 너무 얕잡아봤다.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애초의 정원을 넘겨버렸다. 영어공부의 힘인지, 새해의 힘인지, 그것도 아니면 공부방법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함께 공부할 동료들을 이렇게 빨리 만나서 기쁘다.


그럼 본격적으로 넷플릭스 미드 'SUITS' 로 공부하는 방법을 소개해 본다.



1단계. 스토리에 빠진다


스터디는 2월부터 시작이지만, 넷플릭스 멤버십은 1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유는 스터디가 시작되는 1개월 동안 'SUITS'의 스토리 자체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언어의 이해는 자칫 언어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언어가 만들어진 문화나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의 맥락이 상당히 개입된다. 한마디로 전체 맥락을 이해하면 언어의 이해와 흡수가 빨라진다.


그래서 본격적인 스터디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SUITS' 미드 자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한달 간은 시즌 1을 시작으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에피소드를 시청하면 된다. 자신의 레벨이 낮다고 생각하면 한글자막을, 레벨이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영어자막을,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자막 없이 시청한다. 이 단계의 목표는 'SUITS'를 스터디 교재가 아니라 스토리 자체로서 사랑하게 되는 거다. 


스터디를 시작하는 2월까지 정 시간이 없는 사람은 시즌 1의 에피소드 1-2 두 편만 보면 된다. 실질적인 스크립트 리딩은 에피소드 3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이전 스토리를 보는 것은 숙제다. 에피소드별 40분씩,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2단계. 공부할 에피소드의 스크립트를 만든다


보통 미드로 공부할 때는 영어 스크립트를 구해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 스터디의 포인트 중 하나는 학습자가 직접 스크립트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공부하려는 에피소드의 전체 스토리를 한글 자막을 켜 놓고 본다. 우리 스터디의 경우 첫번째 공부할 에피소드는 첫 번째 시즌의 세 번째 에피소드(SE1 - EP03)다.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모국어 자막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한 에피소드를 모두 이해했으면 본격적인 스크립트 딕테이션을 시작한다. 


먼저, 넷플릭스의 자막을 숨겨놓고 약 1분 ~ 5분 사이의 구간을 자신의 수준에 맞게 설정한다. 그런 첫 구간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딕테이션(받아쓰기)을 한다. 받아쓰기는 꼭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도록 한다. 나중에 이 스크립트를 여러가지로 이용하게 되는데, 종이에 연필로 쓰면 활용도가 떨어진다.


말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줄바꿈을 한다 

반복 횟수는 본인의 수준과 끈기에 따라 조절한다

잘 안 들리는 부분은 무리하지 말고 한글로 들리는 대로 써 놓는다 (예) coast is clear [코스티즈 끌레] 


해당 구간의 딕테이션이 끝나면, 영어 자막을 켜 놓고 딕테이션한 부분을 확인한다. 전반적으로 내가 딕테이션한 부분이 맞는지 확인하면 되는데, 특히 잘못 알아들은 부분, 잘 안 들려서 한글로 써 놓은 부분, 아예 비워놓았던 부분은 영어로 채워넣으면서 텍스트 굵기나 색으로 표시를 해 둔다.

  

이렇게 40분 전체를 딕테이션하면 스크립트가 완성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1시간 정도 공부하면 5-10분 분량이 가능하다. 하루에 1시간 이상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4-6일이면 한 편의 스크립트가 완성된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딕테이션하기로 한 부분을 차근차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에 부담이 있거나 시간이 없다면,
딕테이션 대신에 스크립트 필사를 진행한다. 처음부터 넷플릭스의 영어 자막을 틀어놓고 들으면서 한줄 한줄 대본을 직접 타이핑하는 것이다. 한 문장을 듣고 - 자막보고 타이핑하고 - 다음 문장을 듣고 - 자막보도 타이핑하는 식이다. 번거롭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과정은 영어의 발음과 문자를 매칭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핵심은 자기가 공부할 스크립트를 스스로 타이핑하는 것이다. 


 

3단계. 스크립트를 씹어먹는다


이제 에피소드의 스크립트가 만들어졌다. 아마 직접 딕테이션을 했거나 필사를 했다면 이미 그 안에 나오는 표현이나 단어는 익숙해졌을 거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과 그것을 아는 것은 별개. 세 번째 단계에서는 스크립트를 보면서 낯선 단어나 표현을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


먼저 넷플릭스의 한글 자막을 활성화시킨다. 이후 본인이 직접 작성한 스크립트를 보면서 내가 생각한 뜻과 실제 해석이 같은지를 비교해 본다. 이때 중요한 것이 순서다. 꼭 영어 스크립트를 먼저 해석해 보고 한글자막으로 확인을 하는 게 좋다. 반대가 되면 내가 정확히 모르는 것도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단어나 표현은 꼭 스터디 멤버들이 공유하는 문서에 순서대로 정리를 해 둔다. 이렇게 모아서 기록하는 이유는 나중에 유사한 표현이 나오거나 시간이 지나 잊어버렸을 때 참고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의 70% 이상은 암기한 지 하루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전체의 10%도 채 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한 것을 기록하고 나중에 다시 보는 것은 언어 공부에서 필수다. 참고로 공유문서는 맘먹고 각출하지 않는 이상 누가 어떤 표현을 기입했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수준과 양을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입력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 하나에 나온 모르는 표현과 단어를 공부하고 기록한다.


■ [슈츠 2019] 시즌 1 표현정리  
http://bit.ly/suits2019



4단계. 미드 속 배우처럼 대사를 연습한다


스크립트도 작성했겠다, 무슨 말인지도 알겠다, 이제 남은 건 미드 속의 배우처럼 대사를 연습하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말하기(리딩)'은 사실 언어 학습에서는 가장 기본이다. 본디 언어란 듣고-말하고-읽고-쓰는 순서대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어를 교실에서 배워서 소리가 나는 말하기 연습이 가장 부족한데, 사실 언어학습의 4가지 영역 중에서 가장 실용적인 건 다름아닌 말하기다. 해외 나가면 영어로 말 잘 하는 사람이 최고다!


SUITS 스터디의 핵심도 결국은 이 '말하기'다. 대본을 듣고 이해했으면 그걸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주일 동안 에피소드 하나를 열심히 공부했다면, 남은 일주일은 최대한 자주 대사를 읽어보는 것이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에피소드 안의 배우들이 멋지게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는 자주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대본을 읽을 때는 단순히 '글자'를 읽는데 그치지 말자.  호흡을 어떻게 하는지도 보고, 어느 부분에서 빠르게 읽고 어느 부분에서 천천히 읽는지, 어느 부분을 뭉쳐서 읽는지 관찰하고 따라하면 된다. 이렇게 소리내어 입과 혀를 연습해야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그 표현이 나온다. 


일주일에 몇 번을 읽어야 하는지 정해진 기준은 없다. 다만 적어도 3-5번은 읽어야 오프라인 모임에 나갔을 때 공부한 '티'를 낼 수 있다. 독해와 달리 리딩은 원어민이 아니면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리딩 연습을 한 티가 팍 난다. 한국인이라도 한국어 대본을 술술 읽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리딩 연습을 하면 오프라인 스터디 모임이 정말 기다려진다. 마치 시험공부를 완벽하게 하고 시험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렇게 리딩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학습한 표현이나 단어를 자연스럽게 장기기억으로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선 3단계에서 표현과 단어를 공부해도(학) 그걸 익히는 것(습)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리딩을 하면 자연스럽게 공부한 것들을 익히게 된다. 효과적이고 또 효율적이다. 


리딩 수준을 올릭고 싶다면, 
리딩 중에 1분 정도를 녹음해서 스터디 멤버들의 그룹에 공유하는 걸 추천한다. 약간의 창피함만 무릅쓰면, 생각보다 내 발음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금방 잡힌다. 우리가 원어민으로 태어난 게 아닌 이상, 더 좋은 발음을 목표로 하는 것 보다는 상대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발음을 빨리 잡아내는 것이 현실적이다. 밖으로 드러내면 그런 발음은 잡히게 되어있다.



5단계. 멤버들과 대본을 읽고 녹음한다


위와 같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2주간 공부하고 나면, 드디어 스터디의 꽃인 오프라인 스터디가 열린다. 이번에 시작한 스터디의 경우 첫번째 모임은 2월 13일(수) 19-22시다. 


멤버들이 모이면 우선 리딩을 할 캐릭터를 배정한다. 스터디에 빠지는 멤버가 거의 없다면 애초부터 캐릭터를 배정해 놓는 것이 좋다. 하지만 보통은 스터디 회차마다 참가자 수가 다르기 때문에, 미리 캐릭터를 배정하지 않고 당일에 참여한 사람들이 캐릭터를 랜덤으로 뽑는 것도 괜찮다. 에피소드마다 대사가 엄청 많은 고정 메인 캐릭터가 있고(a), 대사가 적은 고정 캐릭터가 있고 (b), 대사가 아주 적은 주변 인물(c)이 있다. (a)는 대사가 많은 만큼 한명이 맡고, (b)의 경우 2개 정도의 캐릭터를 한 사람이 맡으면 양이 적절하다. (c)는 한 사람이 다 맡아버려도 되고, 등장 시점에 따라 2명이 나누면 좋다.


그런 다음에는 약간의 연습 시간을 가진 후 리딩을 시작한다. 리딩은 총 두번 진행되는데, 첫번째를 리허설처럼 읽고, 두번째는 녹음을 한다. 녹음한 것은 그룹에 올려서 서로 피드백을 해줘도 좋지만 필수는 아니다. 오프라인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서 각자 자신의 녹음을 들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니까. 이런 충격 자체가 스터디에 신선한 자극이 된다. 


리딩 녹음이 끝나고 나면 서로 몰랐던 표현들에 대해서 꺼내 놓고 질의응답을 한다. 뜻은 알았지만 왜 그렇게 해석이 되는지 몰랐던 것을 물어봐도 좋고, 특정 단어에 대한 발음을 함께 연습하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모르면 누군가도 모를 것이라'라는 생각으로 공론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부를 보여야 믿음도 생기고 스터디도 오랜간다.



이렇게 2주간 한 사이클을 돌면 에피소드 하나가 끝난다. 이번 스터디 그룹은 이런 식으로 SUITS 의 시즌 1, 에피소드 10개 (3 - 12)를 마칠 예정인데, 스터디 멤버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라 내심 기대 가득이다. 몇 분이나 마지막까지 서바이벌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2019년 2월-6월까지 모든 수요일을 블락했다. 

사실 원어민들이 보는 미드의 대사를 내가 읽을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비전을 세워야 나는 가슴이 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높은 비전을 현실화시켰을 때 내가 성장한 모습만큼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미드 SUITS 의 에피소드 열 개를 배우처럼 읽는 내 모습,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뛴다. 넷플릭스 중독을 영어실력 향상으로 꼭 승화시키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이 우리를 삼킬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