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어 스터디 그룹 <슈츠(SUITS)> 인터뷰
최근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넷플릭스의 인기 미드 <슈츠>로 영어 스터디를 하는 방법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사의 주제는 제가 아니라 '넷플릭스' 자체라서 아마 제한된 내용만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인터뷰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 원문을 기록하고자 브런치에 남깁니다.
넷플릭스 <슈츠>로 영어를 공부하는 자세한 방법은, 저의 지난 글 <넷플릭스 중독을 영어공부로 승화시키는 방법> 을 참고하세요.
저는 '스마트워크 디렉터'입니다. 국내 중견/대기업의 스마트워크와 스마트오피스를 디렉팅하는 일을 하죠. 흔한 직업 분류상으로는 경영 컨설턴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스마트워크 분야에서는 유럽이 한국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기 때문에 유럽 현지인들과 협업을 하거나 직접 방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 자체는 물론이고 네트워크를 위해서도 자연스럽고 유창한 영어가 필수이기 때문에 늘 영어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유럽 기업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많을 예정이라 집중해서 영어를 익히고자 영어 스터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인기 드라마의 스토리는 대다수 사람들의 흥미를 끕니다. 어떤 분야든 학습은 호기심과 흥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하려면 오래 해야하고, 오래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거든요. 영어공부 때문이 아니라도 관심이 가는 주제여야 공부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영어를 포기한 고등학생을 빠르게 상위권으로 올려주는 과외 선생님으로 유명했는데요, 그 비밀은 교재에 있었습니다. 시중에 파는 지루한 영어교재나 우리말로도 잘 안 읽히는 '타임즈' '이코노미스트' 대신,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 관심있는 주제로 교재를 구성했습니다.
HOT의 토니를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토니의 영문기사를, 별자리에 관심있는 학생에게는 청소년 대상의 과학잡지를 출력해서 공부했죠. 그러면 영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사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서 단어를 찾아보고 문장구조를 공부합니다. 이 원리는 어른들에게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둘째, 넷플릭스는 스터디 운영을 위한 거의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상은 인터넷만 되면 스마트폰이든 노트북이든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자막(번역)의 퀄러티가 높습니다. 게다가 한글과 영어 대본 모두를 제공하죠.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에는 스터디 진행에 손이 많이 갔어요. 일단 영상을 다운로드 받아서 멤버들에게 나눠 줘야하고 그것 파일 마져도 데스크탑에서만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넣으려면 번거로운 수고를 또 해야했고요. 자막도 공식적인 건 구하기가 어려워서 몇 시간이고 인터넷을 뒤져야 했고, 영상은 비디오로 자막은 종이로 따로 나눠서 봐야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거로운 과정을 넷플릭스가 한번에 해결해줬어요. 한 달에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말이죠.
셋째, '슈츠'의 에피소스는 실제 비지니스 환경을 반영하기 때문에 일하는 성인들이 몰입하기 좋습니다. 저희 스터디는 30-40대 중심의 일하는 성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대기업의 관리자도 있고, 스타트업 대표도 있고, 프리랜서도 있죠. 이런 사람들에게는 '프렌즈(Friends)' 같은 미드는 몰입이 잘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고가는 표현이나 대화가 실제 비지니스 환경에서 사용할 일이 적어요.
그래서 선택한 드라마가 실제 로펌의 사건을 에피소드로 하는 '슈츠(SUITS)'입니다. '슈츠'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대화는 실제 비지니스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고 고급스럽습니다. 한마디로 톤앤매너 자체가 business-friendly 하죠.
작년 12월 17일, 2019년 시작을 목표로 페이스북에 모집 포스팅을 올렸습니다. '슈츠'의 메인 케릭터가 다섯이라 5명을 모으려고 했는데, 몇 시간만에 열분이 넘게 신청을 했어요. 넷플릭스 구독과 장소 예약에 필요한 비용을 선납해야 멤버가 확정되는데, 이 역시 만 하루만에 끝났습니다. 신년효과도 있었겠지만, 영어에 대한 성인들의 열정이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어요. 현재 총 10명이 시즌 1을 자유롭게 시청하면서 2월 첫 모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5개월 동안 '슈츠'의 첫번째 시즌을 다룹니다. 한 시즌은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어있는데요, 1월에는 에피소드 1,2를 자유롭게 시청하고 2월부터 매월 두 개의 에피소드를 다룹니다.
오프라인 모임은 격주 수요일 저녁 7-10시예요. 이때 저희가 모여서 할 일은 대본읽기입니다. 당일 제비뽑기를 통해서 리딩을 할 캐럭터를 정하고 이를 드라마 속도에 맞춰서 읽는 거죠. 그럴려면 대본이 필요하겠죠. 오프라인 모임 전에 멤버들이 해야하는 게 바로 이 대본을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대본이 마련되지 않으면 스터디에 와도 할 일이 없어요.
대본은 원문을 들으면서 딕테이션을 해서 만들어도 되고, 영어자막을 보면서 하나하나 필사를 해도 상관없어요. 각자의 영어 수준에 맞게 방법을 선택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대본을 자기 스스로 준비하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대본을 검색할 수도 있지만, 그러느니 한줄한줄 영어 자막을 보면서 필사를 하는 게 나아요. 생각보다 빨리 할 수 있고 배우는 것도 있꺼든요.
대본을 만든 후에는 각자 읽기를 연습합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멤버들고 함께 읽어야 하니 연습없이 참가하기는 힘들 거예요. 드라마 속도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읽으려면 각 대사의 뜻과 의미를 꿰뚫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본격적인 학습이 일어납니다. 잘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비밀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서 물어볼 수 있어요. 또 알고 있었거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은 스터티 멤버들이 같이 구글 공유문서에 시즌별로 정리해요. 기록과 검색을 위해서 필요하죠.
저희 스터티 멤버들을 위해서 상세한 공부방법을 포스팅으로 남겼어요. 혹시 혼자라도 해 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이에요. 다른 언어로 진행되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그 언어로 표현하기 위함이죠.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언어 본연의 목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요. 상황별로 친절하고 정확한 자막도 제공하죠.
언어 본연의 목적은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공부나 시험을 목적으로 하면 언어 공부의 가성비는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말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영어학습은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언어를 이해해야 자연스러운 대본 읽기가 가능하니까요. 직장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 가성비가 낮은 '열심히'는 과감하게 버리고 '스마트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방식을 프랑스어 공부에도 적용하고 있어요. 제 프랑스어는 아직 초보 수준이라서, '슈츠'같은 현실감 있는 드라마 보다는 내용이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선호해요. 간혹 흥미를 끄는 애니메이션의 언어가 프랑스어가 아닌 경우도 있는데요, 넷플릭스는 이럴 때도 유용합니다.모든 영상의 '음성언어'와 '자막언어'를 따로 설정할 수 있거든요. 즉, 영어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도 프랑스어 더빙, 한글자막 설정이 가능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간단한 VPN 앱을 깔아야 할 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