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옥 Sep 06. 2019

일 고르는 기준을 바꿨다

사람들을 통합하는 일  vs. 분리하는 일


'베타랩'이라는 사업자로 2013년부터 일해오고 있지만, 내 일의 본질은 사업하는 대표라기 보다는 프리랜서 컨설턴트에 가깝다. 스마트오피스 구축에서 작은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참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현장에 참여해서 팀원들과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 좋다 © 진형준 디자이너


실제로 나는 외부 전문가로서 평가를 해주고 '자, 이렇게 하세요' 하는 방식보다는, 직접 참여해서 현장의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다. 아직 스마트워크를 평가할 만큼의 단독 기술이나 노하우가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개인적으로 현장의 실제 결과(변화)를 접할 때 동기부여가 된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계약 기간 동안 클라이언트의 직원으로 TFT 멤버들과 같이 학습하고, 분석하고, 회의하면서 같이 결과를 만들면 진짜 일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직접 참여를 선호하다보니 한 달에 참여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생긴다. 또 삶에는 '일' 말고도 가족, 휴식, 친구, 배움, 여행 같은 중요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부득이하게 일을 고르게 된다. 



과거의 일 고르는 기준: 결과, 보상, 성장


이전까지 나의 기준은 지극히 자기계발 위주였다. 우선순위 대로 요약하면, 첫째가 결과, 둘째가 보상, 셋째가 성장이다. 

기준 1. 내가 탁월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인가? 
기준 2. 그와 상응하는 보상(페이)가 있는가? 
기준 3. 일이 끝난 후  내가 성장해 있을 것인가?


그런데 요즘 이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일을 해냈을 때 짜릿함은 있지만, 그 짜릿함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짜릿함에 근본적으로 행복하지 않다. 


탁월한 결과는 마약이다. 성취감과 보람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어떤 일들은 세상에 대한 우월감마저 느끼게 한다. 보상은 그렇다. 비즈니스 시장에서 나의 존재감을 명확히 말해주고, 내가 이 세상에서 쓸모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성장은 비교적 내적인 만족감에 가깝지만, 과거의 내 자신을 지금의 나와 비교한다는 면에서는 긴장의 연속이다. 성장 본연의 기쁨보다는 성장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도 컸다.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이 단순한 질문을 수 개월 전부터 해왔다. 그리고 뭔가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어서는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세상에 대한 '기여'였다.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여,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기여,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기여. 인간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리스트에서 누락했기 때문에, 일을 잘 해도 충만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을 고르는 새로운 기준 : 통합 vs. 분리


그래서, 요즘 나는 일을 고르는 기준을 정비하고 있다. 이전 세 개의 기준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대전제가 생겼다. 


이 일은 사람들은 통합하는가, 분리하는가?

말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 좀 거친 표현이 되었지만 의미는 쉽다. 어떤 일이 사람들을 더 뭉치게 하고, 믿게 만들고, 사랑하도록 돕는 일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더 흩어지게 하고, 경계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경쟁하게 하는 일인가. 만약 전자라면, 내 결과가 탁월하지 못하고 보상이 좀 적더라도 그 일을 해야할 것 같다는 게 달라진 내 기준이다. 


주변에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도 많고, 티비에 나오는 사람도 많다. 나도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어쩌면 지난 40년간 나는 오직 그 방향만을 보며 뛰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 행복했는가?'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행복하다고 자위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진실로 행복하고 싶다. 행복이 간절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는 의미다. 이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스스로 자위하거나 합리화할 필요가 없을 만큼, 내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하게 이 삶을 살길 원한다.


가끔 나는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배달할 음식을 만드는 이의 미소가 진심으로 부럽다. 물질적으로는 더 많은 걸 가졌음에도 그 근처의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건, 내가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는 헤매는 중이지만, 내 일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 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 불혹(不惑)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