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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Sep 15. 2019

그래도, 우선은 메세지에 주목하라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 제작진들, 힘을 내요!

내 취향따라 선택한 영화는 아니었다. 부모님과 외국인 남친을 위해 가능하면 자막없는 것으로, 가족이 마음편히 웃을 수 있는 코미디물로, 그렇게 고르다보니 남은 영화가 <힘을 내요, 미스터리> 하나였다.


영화는 좋았다. 아이 없는 내가 공감하기는 힘든 소재에 유머 코드도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대구가 고향인 60대의 어머니는 두 시간 소리내어 웃고, 소리내어 우셨다. 그러고 보니 나도 중간중간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남일이라고만 여겼던 골수기증이나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그래, 이 정도면 12,000원 영화 값으로는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영화를 만들어준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고마웠다. 작품성이니, 흥행성이니, 플롯이니, 시나리오니 그런 걸 떠나, 추석에 맞춰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저 하나의 장면을 위해서, 저 하나의 감동을 위해서 무수한 시간과 싸웠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문득 고맙게 느껴졌다.


사실 우리는 스크린 뒤에 편히 앉아서 영화의 복선이 어떠니, 주인공의 연기가 어떠니, 캐스팅이 어떠니 하며 습관적으로 평론을 한다. 방바닥 평론이든 전문가 평론이든, 평론 그 자체는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완성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예술 과제’로 보는 사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많은 걸 우리가 놓치는 건 아닐까.


그것은 감독의 메세지일 수도 있고, 배우 한명한명의 노력일 수도 있고, 시대의 아픔이나 그 안에 든 시대정신일 수도 있다. 비록 그 표현방법이 칸 영화제의 상을 탈 만큼 세련되진 못하더라도, 이것들은 엄연히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세련된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딸에 대한 이철수의 사랑이 얕은 게 아니듯, 영화적 표현의 완성도와 영화 속의 가치는 서로 별개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엄마한텐 정말.. 너무 좋다

극장을 나오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잘생겨 몰입이 잘 안됐던 차승원의 바보 연기와 약간은 어색했던 몇몇 인과관계에 대한 내 비판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영화를 메세지 자체로 본 어머니의 한마디에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한 나의 지적허영이 비교돼서였을까. 모르겠다.


허접해 보이는 강의라도 한 주제로 1시간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를 가졌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아무리 허접해 보이는 책이라도 300페이지의 종이로 인쇄되어 나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아무리 허접해 보이는 영화라도 수많은 배우들이 참여하게 만들고 전국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는 건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 엄청난 결과물을 만원 조금 넘는 금액으로 접하면서, 영화제 수상작 선정에나 필요한 높은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를 평가하는 건.. 왠지 순서가 바뀐 느낌이다. 더구나 영화의 본래 메세지는 뒤로 한 채 평론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건 마치 119로 걸려온 외국인의 전화에 문법이 틀렸다며 소방차를 보내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영화를 보기로 했으면 영화를 보자
이야기를 듣기로 했으면 이야기를 듣자

말하는 방식과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는 꼭 필요하면 나중에 지적하더라도 우선은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에 집중하자.


영화관에서 만원을 내고 몇 배의 가치를 얻는 방법 중에 하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메세지와 제작진의 노력을 읽는 것이다. 장면 구석구석, 크레딧 한줄한줄에 녹아있는 가장 현실적인 영화의 요소를!


영화 산업을 발전시키고 영화계 종사자들을 성장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날카로운 비평이 아니라, 영화속 미스터리처럼 조금은 사랑스러운 이해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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