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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Oct 13. 2019

삶의 질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나의 만족감, 그것이 당신의 삶의 퀄러티다.


한달에 수 억을 버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수 천만원이 매달 통장에 들어오면 어떨까?



삶의 질은 수입과 비례하는가


한때 나도 삶의 질을 내 수입으로 평가하던 때가 있었다. 수입이 두 배가 되면 두 배로 생산적인 삶을 산 것 같고, 통장의 자리수가 달라지면 레벨업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연봉의 절반인 사람을 만나면 측은하고, 두배인 사람을 만나면 존경스럽기도 했다. 수입이 능력의 총점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놓친 게 있었다.


매월 수 백 만원, 수 천 만원, 수 억 원을 벌기 위한 댓가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건 건강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고립감일 수도 있고, 엄청난 불안감일 수도 있다. 


한달에 2천만원을 집에 앉아서 버는 유투버가 이런 말을 했다. 즐겁고 재미있는 척을 하며 한달 내내 집에 있으면서 자기는 외로움과 불안감으로 죽어간다고. 출근의 목적이 은퇴 후 연금이라고 공직자는 흔하고, 지시와 관리에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한달에 몇 백만원을 가져가는 가장들은 차고 넘친다. 월급을 과거 연봉 수준으로 벌었지만 부족한 잠 때문에 항상 예민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던 달도 있다. 이건 내 이야기다.



수입과 삶은 어쩌면 별개일지도


돈이 많으면 불행하다는 뜻이 아니다. 절실함을 채울 수준의 액수만 넘으면, 수입과 삶의 질은 별개의 문제라는 걸 내가 깨달았을 뿐이다. 


집이 있고 아이가 없는 내게는 그 금액이 이 백 만원 정도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삼 백 만원 쯤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여전히 일을 하시니 이 백 오십 만원 정도일지도. 


어째튼 그 금액만 넘으면 내 삶과 내 수입은 별 상관이 없다. 서너 개의 프로젝트가 돌아가고 특강이 많아서 수입이 아주 클 때도, 유럽 휴가를 다녀와서 수입이 제로에 가까울 때도 내 삶의 질은 비슷하다. 개념적인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다. 



임계점을 넘은 수입은 오히려 삶을 갉아먹는다


내 경우엔 오히려 높은 수입이 있었던 달 내 삶은 그렇게 피폐할 수가 없다. 가족과는 '피곤해 보인다'라는 말 외에 대화가 없고, 가족과 식사를 할 때도 나는 카톡에 답변을 하느라 폰만 보고 있고, 잠이 부족하니까 작은 실수에도 짜증이 나고, 밖에서 파는 MSG 가득한 음식으로 세 끼를 채운다. 그렇게 사는 달은 얼른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가족, 건강, 여유, 감동, 자연..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고 얻는 것이 바로 그 '높은' 수입이다. 통장에 동그라미 개수만 늘릴 뿐, 진짜 삶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는 그 숫자 때문에. 



Right Now, Right Here, and Myself!


그럼 삶의 질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지금 이 순간 나의 만족감'이라 말할 수 있다. 미래의 약속이나 과거의 추억이 아닌, 이 순간 여기에서 느끼는 '나'의 만족감. 그게 바로 내 삶의 질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맞다. 이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순간순간이 행복했던 내 하루들 (c)최두옥 인스타그램


이런 측면에서 워라밸과 소확행을 이야기하는 젊은 세대들이 나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길. 인스타그램의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모두 실제는 아니듯이, 그러다고 모두 위선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사진이 있든 없든 그 너머에 있는 만족감인데, 그렇게 자신의 주관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이 시대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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