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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Mar 26. 2017

공항에 3시간 전에 가야하는 이유

만약의 경우가 생겨도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3시간이기 때문이다

"1시간이면 수속 다 끝나는데, 3시간 전에 갈 필요가 있나?"


출장이나 휴가로 해외를 나갈 때 곧잘 나오는 질문이다. 세 명 이상 함께 출장을 나갈 때면 예외가 없다. 넉넉 잡아도 1시간이면 체크인부터 출국심사까지 모두 끝나는데 왜 굳이 3시간이나 미리 가서 시간을 낭비하느냐는 뜻이다. 나 역시 해외여행 경험이 다섯 번이 안 되던 대학시절에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다. 특히 아침 10시 비행이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잠이 덜 깬 채로 공항까지 가야할 때는 - 피곤한 몸으로 인한 짜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 의문이 더했다. 

 

하지만 출입국 심사 때 찍은 스탬프가 여권 두 개를 꽉 채우고, 비행기표에만 사비로 6천만원 이상을 쓴 지금은 그 대답에 단호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꼭 3시간 전에 간다. 수속에 1시간이 아니라 10분 밖에 안 걸리더라도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는 물리적인 수속 시간 때문에 공항에 3시간 전에 가야하는 게 아니다. 행여나, 만에 하나, 무지하게 운이 나빠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소한 필요한 시간이 3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래 두 에피소드는 실제 일어난 일이다. 


에피소드 1. 


2008년 9월, 늦은 여름휴가 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코자 네덜란드로 출국을 하는 날이었다. 한창 일을 많이 할 팀장 위치에서 2주간 휴가를 가려니 출국 직전까지도 사무실에서 밤을 새야했다. 새벽에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들러서 간단히 짐과 여권을 챙긴 후 공항 리무진을 탔다. 


겨우 시간맞춰 리무진 좌석에 앉아 비행기 티켓이며 여권이며 혹시나 놓고 온 것은 없는지 살피던 중, 처음으로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경험을 했다. 여권 만료일이 6개월이나 지나 있었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일년에 겨우 한번 해외여행을 가던 때고, 출국 직전까지 연달아 야근에 밤샘을 해서 여권 만료 기간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다.  


정말 몸이 콩크리트 속에 묻히는 기분이었다. 다른 거야 어떻게든 공항에 가서 이야기를 해 보겠지만 여권 만료는 방법이 없다. 100% 내 불찰이고, 비행기표를 환불할 수도, 휴가를 다른 날로 변경할 수도 없다. 특히 친구의 결혼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여권이 3월에 만료되었단는 사실을 9월 출국일에 알았다!


허나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다고 했던가. 뇌가 평소보다 열 배는 빠른 혈류량으로 도는 느낌이었다. 목표는 오직 하나. 어떻게 해야 내가 발권한 비행기 표를 타고 네덜란드에 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가는 방법이 있을 것인가. 여권을 신청해서 나오는 시간이 빨라야 3-5일인데... 


'잠깐! 분명 국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업하는 사람들 중에는 당장 다음 날 해외를 나가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있을텐데,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여권을 발급받지? 만약 당일에 여권을 잃어버렸다면?' 


분명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긴급하게 여권 발급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직관적으로 머리속에 떠오른 키워드 '긴급여권'으로 검색을 해 보니.. 정말 긴급여권 서비스가 있었다. 인천공항 영사민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고, 긴급으로 여권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 내 경우에는 회사에 휴가계를 쓰면서 네덜란드 친구의 청첩장 사본을 첨부했었는데 그 서류가 결정적인 증명서류가 될 수 있었다. 


리무진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인사팀 팀장님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회사의 공식 직인이 찍힌 '증명서류'를 팩스로 공항에 보내주셨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팩스를 찾고, 영사민원서비스 부스를 찾고, 신청서를 쓰고, 상황을 설명하고(더 정확히는 간곡하게 담당자를 설득하고), 발급을 기다렸다. 11시 반 비행기었는데, 10시 반 경에 임시여권이 발급되어 나왔다.


당일에 발급받은 긴급여권에 찍힌 유럽 출입국 스탬프 


발급을 받자마자 나는 초고속으로 체크인과 출국심사를 거쳐 겨우 비행기를 탔다. 여권 만료일을 확인한 그 순간으로부터 단지 4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4년은 더 산 느낌이었다. 내가 리무진을 15분이라도 늦게 탔다면, 네덜란드행 휴가는 100만원이 훨씬 넘는 항공권과 함께 통채로 날아갔을 것이다. 


에피소드 2. 


세바시팀의 두 번째 뉴욕 공개방송이 있던 2015년 여름. 

두세 명이 아니라 열명이 넘게 함께 뉴욕으로 출국을 하는 판이니,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여론(?)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결국 카리스마 작렬하는 책임 피디님의 한마디로 모든 멤버들은 세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단체 티켓이라 짐 체크인만 끝내면 뭐 그닥 문제될 것도 없어서, 다들 빨리 출국심사 마치고 쇼핑이나 하자 생각했다. 


세바시 뉴욕특집 강연회를 위해 출국하는 세바시 스태프 & 김창옥 원장님


하지만 기대를 뒤엎고 체크인 데스크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90일 이내의 상용업무로 미국을 가는 경우, 비자는 필요하지 않지만 ESTA(전자여행허가제)라고 하는 여행허가를 온라인에서 미리 받아야 하는데 몇몇 스태프가 ESTA를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온라인에 접속해서 신청을 하고 몇만원을 지불하면 1시간 이내에 허가증이 나오지만, 상황에 따라 48시간까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ESTA 신청은 늦어도 출국 일주일 전에 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신청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것도 세 명이나. 


미국 전자 여행 허가 신청(ESTA) 홈페이지


우리는 체크인 앞 좌석에 앉아서 노트북을 펴기 시작했다. 영어는 모두 잘 하지만, 영어로 된 사이트에서 중요한 허가를 받는 것은 영어 자체보다 백배는 부담스러운 것 같다. 데이터가 많은 스태프에게 인터넷을 구걸한 후, ESTA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명 한명 미국 방문허가를 신청했다. 이미 신청을 해서 시스템에 익숙한 경우, 결제를 포함해 한번 신청을 하는데 10-15분이면 충분한데 이 날따라 왜 그렇게 실수와 오류가 많이 나는지. 마음 속으로 '휴'를 외치며 스태프 세 명의 ESTA 신청을 하는데 꼬박 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 중에는 촬영의 핵심인 카메라맨이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결국 스태프 전원이 ESTA 허가서를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받았고, 출국심사까지 무사히 거쳐 뉴욕까지 14시간의 비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수속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며 한 시간만 늦게 공항에 도착했더라도 두 명의 촬영스태프는 출국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바쁜 뉴욕 현지 스케줄을 쪼개고 쪼개서 현지 카메라 감독님을 섭외해야 했겠지. 세바시의 발음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미국인들이 촬영을 맡았다면, 남은 스태프들이 더 많은 시간과 리소스를 촬영팀과의 호흡에 맞춰야 했을 거다. 결과도 잘 나왔을지 미지수고. 




굵직한 두 경우만 소개했지만, 이 외에도 몇몇 자잘한 에피소드는 많다. 공항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 사례는 무한 확장된다. 차로 1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멤버들이 30분 전에 모였는데 결국 한 멤버가 중요한 물건을 집에 놓고 와서 다시 집을 들렸다 가야했던 경우도 있었고, 여유있게 기차를 탄다고 20분 전에 플랫폼으로 나갔는데 테러로 인한 급작스런 가방검사에 겨우 20분에 맞춰 세큐리티를 통과한 경우도 있었다. 


보통 '무엇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한 가지 가정이 숨어있다. '만약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고 스무드하게 일이 진행된다면' 이라는 가정이다. 이 가정은 맞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맞지 않다. 30분 거리를 버스 두 번에 가는 심플한 과정에서도 카드에 잔액이 없거나, 카톡을 하다가 정류장을 놓치거나, 약속장소를 착각했거나, 버스가 운행간격을 못 지키는 등 예상치 않은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을 포함한 예상 시각. 내 생각에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내게 필요한 시간이다. 특히나 한번 놓치면 수습이 불가능하거나, 수습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거나, 그로 인한 피해가 큰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일 하나가 아니라 두 번이 일어나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시간 낭비를 예방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난 앞으로도 공항에는 꼭 3시간 전에 도착할거다. 
수속하는데 1시간이 아니라 10분 밖에 안 걸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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