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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Aug 15. 2020

인기가 많으면 고퀄의 팬도 많을까?

연세대 학부시절, 우리 학부에는 선남 선녀가 정말 많았다.

고3까지는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교복에 단발머리를 해야했던 나로서는 공부도 잘하면서 연예인 같던 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특히 나처럼 심리학과 영문학을 이중 전공하던 동기가 한명 있었는데, 그녀는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관심사가 달라서 단짝처럼 다니진 않았지만 같이 듣는 수업이 많아서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공강이 겹쳐서 학관에 같이 갔는데, 그녀가 삐삐를 보면서 자꾸 짜증을 냈다. 영문학 수업을 같이 듣는 남학생 한 명이 자꾸 메세지를 보내서 스트레스란다. 이상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인기있는 여학생한테는 돌아가며 대시하는 가벼운 친구라 관심이 1도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는 밥을 먹으며 그 친구에게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몇 명이나 그 친구에게 대시를 했는지, 입학하고 남자친구는 몇 명이나 사귀었는지 같은,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흔한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대답이 의외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들에게 데쉬도 많이 받고, 대학에서는 나우누리에서 쪽지도 많이 받아서 기대는 꽤 컸는데, 막상 대학와서 대시받은 남자 중에는 괜찮은 애들이 없단다. 그래서 아직도 남친은 없고 주변을 맴도는 남자는 많단다.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거 아니냐고 물으니, 친구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그 남학생들의 실명을 알려줬다. 빈 말이 아니었다. 동기부터 선배까지 죄다 별로인 사람 뿐이었다. 더 정확히는 친구의 외모/성격/지식 수준을 고려했을 때 친구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되는 남자들이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austinlawrence.com/


풍요속의 빈곤이란 말이 실감됐다. 선택지가 많으면 그 만큼 좋은 옵션도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친구의 옵션에는 고퀄이 부재했다. 다른 여자였다면 그 중에 제일 괜찮은 누군가와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는데, 이쁘고 똑똑한 이 친구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몇 달 후 우연히 백양로에서 마주쳤을 때는 자기 만큼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멋진 고대 연하랑 손을 잡고 있었다.


팔로어가 많고, 팬이 많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굳이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삶을 무대처럼 즐길 수 있는 특권이 되니까. 하지만 팔로어나 팬의 수가 많다고 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하면 착각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의 팬이나 팔로어가 어떤 사람들인가이고, 그 좋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을 때가 정말로 기쁘다. 1만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친구와 팔로어 숫자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오랜 페친이 건강한 철학과 소신있는 삶을 사는 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슴이 꽉 찬 느낌이 든다는 거다.


오늘 새로운 인스타그램 부캐를 만들고, 오랜만에 팔로어 한사람 한사람의 프로필을 천천히 구경하다 보니 20년 전의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나저나 '삐삐'에 '나우누리'에 '학생회관'이라니! 이제는 나도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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