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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Jul 31. 2020

'헛똑똑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공동의 이슈에 다르게 대처하는 A 아파트와 B 아파트 이야기


A 아파트 이야기


A 아파트 온라인 카페에는 종종 재미있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시댁에서 파를 많이 보내서 나눕니다. 현관문에 걸어둘께요', '오늘 저녁에 코스트코에 갈 건데, 필요한 거 있는 분 대신 사다드릴 수 있어요' 

A 아파트에서는 사는 데 문제가 생기면 입주민들이 이 카페를 통해서 내용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한다. 한번은 관리 소장이 한 입주민에게 갑질을 당했는데,이걸 본 다른 입주민들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결국 갑질에 대한 사과문도 받아냈다. 


B 아파트 이야기


위치가 떨어진 B 아파트는 조금 달랐다. 소위 사회 엘리트 계층들이 주로 사는 이 아파트는 이슈가 생기면 고소장부터 언급된단다. 밖으로 나는 소리는 없지만 그래서 분위기는 삼엄하다. 


한번은 아파트 관리 회사가 입주민을 위해 수 억원을 투자해 아침식사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한 입주민이 식당 소음이 우려된다며 수 백억이 드는 방음 설비를 요청해서 결국 서비스가 취소됐다. 이후에도 비슷한 이유로 입주민을 서비스나 편의를 위한 시설이 사라졌고, '공정한' 이용을 위한 복잡한 메뉴얼도 생겼단다. 



판단하긴 어렵지만, 왠지 아쉬운 B 아파트


두 아파트의 이야기에서 뭐가 더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건 무리다. 개인적인 성향이나 아파트에 대한 기대에 따라 선택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B 아파트 입주민들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어렵게 푼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A 아파트의 입주민들에 비하면 B 아파트 입주민들이 사회적 리소스를 많이 가진 건 분명한데, 그 리소스를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쓰기 보다는 개인의 '손해'를 최소화하는데 낭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갇힌 똑똑함이랄까, 내 손해는 잘 계산하지만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선 이익은 보지 못하는 느낌이다. 공동의 이익을 통해 내가 얻을 걸을 못 보지 못하니, 내가 잃을 수도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이를 너무 두려워하다 보니 내가 가진 지식과 힘을 모두 '방어'에 사용하는 것이다.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제 이 이야기를 듣고, 혹시 나도 그런 헛똑똑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제안을 '공격'으로 느끼고, 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뭔지를 그리는 대신 내가 잃을지도 모르는 것에만 집중하는, 심지어 제안을 받아들인 후에도 행여 내가 손해는 보지 않을까 싶어서 일 보다 더 복잡한 계약서와 원칙들을 만들어 내는 헛똑똑이가 바로 나는 아닐까. 물론 무턱대고 손해보는 협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협업을 제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그 동안 할까말까 고민했던 프로젝트, 그리고 나만 손해보는 것 같아서 거절하려 했던 제안들을 리뷰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진행 자체로 내 콘텐츠 개발과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일들은 갇힌 똑똑함을 버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시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OO님, 지난 번 제안에 대해서 답이 늦었습니다. 아주 잘 될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저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아서 같이 해 보고 싶어요. OO와 저에게 윈윈하는 결과가 되도록 제 편에서 최선을 다 할께요. 요청하신 자료는 오늘 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답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결과가 어찌될 지는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미래의 결과는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훗, 이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 새로운 희망과 열정이 생긴다. 어제 인사이트 있는 아파트 이야기를 나눠 준 두 사람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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