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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Mar 07. 2021

삶에도 방학이 필요합니다

2개월 반의 프랑스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번 귀국은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공항에서 노트북을 안 꺼낸 건 처음. 대기시간 포함해 16시간 동안 '삶'이라는 신과 긴 대화를 나눈 느낌이다. 선물같은 새벽, 그 대화의 핵심들을 정리해 본다.


파리 샤르드골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1. 삶의 중요한 것이 바뀌었다


출국하는 나에게는 '내가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의 내게 중요한 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였다. 주어였던 '내가'는 신기하게 빠져버렸다. '나'라는 자아가 중심에서 빠지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 되더라. 두달 간 지속했던 디지털 필사를 하면서 이론적으로 깨달았고, 삶에서 연습하면서 마음으로 느꼈다. 


이제, 내가 스마트워크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 보다는 일하고 싶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삶을 희생하지 않고도 성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들이 일과 삶 모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제, 내가 좋은 딸, 좋은 누나,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대신, 부모님이 남은 생에 '내가 잘 살았구나'를 느끼시게 하는 것, 동생과 친척들에게 '힘들 때 믿어주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게 하는 것, 아모리에게 '내 영혼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제 내가 온라인 비즈니스 사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 대신, 모든 사람들이 수입 걱정없이 세상을 경험하고, 누구든 세상에 기여할 텔런트를 가졌음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2. 주는 것이 쉬워졌다


출국 전의 나는 줄 때마다 결심이 필요했다. 왜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겨우 몸이 움직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정말 그랬다. 


나의 'Giving'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나는 좀 달라졌다. 나의 이유가 아니라 상대의 원함이 'Giving' 의 중요한 이유라는 걸 알게 돼서다.


프랑스에서의 2월은 내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달이었다. 애지중지하던 신형 노트북도, 값나가는 먹거리도,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도, 필요한 도움도, 사랑의 마음도 내어주는 연습을 했다. 신기한 게, 주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주니까 더 많이 생긴 느낌이다. 심적으로도 풍성했지만, 물질적으로도 그랬다.



3.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20대의 건방진 노마드 같은 이 말은,

실은 삶에 대한 깊은 겸손에서 나온 말이다.


나의 노력으로 무엇이 될 거라는 사실은 오만을 넘어 비현실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 많은 요인들과,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관계자들을 인정한다면 삶에서 필요한 건 '노력'이 아니라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노력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다. 


노력해야만 되는 일이라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노력을 미화하는 건 존중이 아니라 고문이다. 



4. 삶의 목적은 '이 순간의 경험'이란 걸 깨달았다


솔직히 후회한다. 이루어야 할 목표를 세우고 달려갔던 지난 40년의 시간은 분명 값졌지만 아깝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이 한 문장이 직전까지 느꼈던 삶의 어려움과 고통을 다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왜 높은 목표를 달성하고도 허무했는지, 왜 경쟁에서 이겨도 불편했는지, 왜 꽃 하나 동물하나도 제대로 기르지 못했는지, 왜 일을 삶에 중심에 두었는지도 이해가 됐다. 


삶의 유일한 목적이,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이라는 사실은 내게 형언할 수 없는 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내게는 해야할 일도, 이루어야 할 목적도, 고쳐야 할 무엇도, 참아야 할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스스로가 만든 감옥의 내 모습이 측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감옥에서 해방되는 평온함을 느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어른에게도 '방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체적 휴식을 위한 쉼이 아닌, 정신적 휴식을 위한 1-2개월의 긴 방학이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일년에 두 번 방학을 가지고 싶다. 가족과 함께하는 방학 1개월, 내 안의 신과 함께하는 방학 2개월을. 


이런 삶이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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