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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Feb 24. 2021

코로나, 파리, 리모트워크, 자전거 출근, 그리고 행복

파리 리모트워크 2개월의 단상

코로나, 파리, 리모트워크, 자전거 출근, 그리고 행복

누군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요즘 아그네스는 언제 행복해요?"라고

나는 요즘 출퇴근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에어팟을 귀에 걸고, 유행타지 않는 음악을 플레이하고, 자전거로 따뜻한 파리의 겨울을 달리면, 여기 이 순간이 천국이라는 걸 실감한다. 걸어서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 파리지앤느-스러운 옷에 힐을 신고 걷는 게 힘들어서 자전거를 타는데, 음악 때문인지 매번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출근하라는 사람이 없어서 출근이 행복하고, 

퇴근하라는 사람이 없어서 퇴근이 행복하다. 


라데팡스 신개선문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가면 사무실이 보인다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내일은, 다음주에는, 올 여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 작은 자유같지만, 어쩌면 그것이 삶의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의 자유가 주는 행복함을 알게 된 지는 꽤 됐지만, 이런 행복감은 경험할 때마다 벅차다.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감사 기도를 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기도를 하면 신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행복을 느끼게 도와주어라”



'돈이 있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이 말은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데 돈에 관한 것처럼 들린다즉 '돈' 대신에 다른 단어를 넣어도 다 말이 된다. 예컨데 '사랑을 한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다' '이쁘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등등. 사실 어떤 한가지 요소만으로 행복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또, 이 말은 현실과도 거리가 있다. 사실 행복의 상당수는 돈을 기반으로 한다. 출근길 내 행복을 누군가는 '돈 없이도 일상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포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돈이 있어서 가능했고, 적어도 수월했다.


특별한 준비없이 음악을 재생하는 아이폰은 100만원을 호가하고, 어디서든 바로 원하는 음악을 듣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매월 5천원이 결제된다. 유럽에서의 무제한 데이터도 무료는 아니다. 거기에 활동의 자유로움을 주는 아이팟, 오르막길도 어렵지 않은 수십 만원짜리 자전거, 자전거 주차장과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코워킹스페이스 월 사용료는 50만원이다.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한 이 행복한 순간을 남겨두고 싶었다


돈이 없어도 뭐든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돈이면 뭐든 될 거라는 생각 만큼이나 허상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나서,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우리 세대에겐 그렇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돈의 가치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뭐 하나가 충분하다고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그러나 경제적 & 시간적 자유는 분명 행복을 쌓는 튼튼한 기반이다. 파리에 있는 동안, 그런 현실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선물같은 토요일, 다시 찾은 주말


유럽 리모트워크 장점 중 하나는 

토요일이 '선물' 같다는 거다


한국에서의 주말은 내겐 쉬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주중에는 그야말로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일을 '멈추고' 쉬어야 다음 주를 또 '열심히' 할 수 있다. 


반대로 파리에서의 주말은 뭔가를 '맘껏'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에 - 오전 4시간 정도만 '적당히' 일하고 오후엔 쉬기 때문에 - 주말에는 가족과, 친구와, 내 자신을 위한 뭔가를 할 에너지가 많다.


꽤 오랫동안, 나는 이렇게 살면 큰 일이 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적어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순수한 내 즐거움은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야지 그게 일상이 되면 죄책감이 들고 했다. 일이 아니면 적어도 그 활동이 콘텐츠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좋게 말해 '일과 삶의 통합'이지 그건 '일중독'이었다.



집 근처 빵집에 줄 선 사람들을 보면, 내가 프랑스에 있구나 실감한다.


파리에 와서 다시 주말을 찾았다. 

5시가 되면 칼퇴하고, 주말 식사를 서너 시간씩 준비하고, 일을 우상화화지 않는 사람들과 두 달을 살다보니, 일과 나의 거리를 조정할 수 있게 됐다고 해야하나.


덧붙여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일이 잘 되는 것과 '내가' 열심히'하는 건 별개라는 것. 좀 과장하면, 열심히 하지 않아야 다른 레벨로 점프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고 이해하게 됐다. 


주말 아침에 말이 길어지니, 

이 주제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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