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보다 바캉스와 저녁메뉴가 더 중요한 프랑스인들은 비슷한 배경의 한국인들보다 더 풍요롭고 여유롭게 산다. 마음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내가 배운 공식대로면 더 쪼들리고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말이지
지금까지 내가 배운 공식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물질적으로 여유있게 살기 위해서는 아낄 게 아니라 나누고 지출해야 하며, 나중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지금의 행복을 쫓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면 거침없이 돈을 쓰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고민없이 시작하고
하기 싫은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요즘 나는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공식을 배우는 중이다.
삶의 진리가 배운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리 없다.
학문적인 접근과 깊이가 있어야만 이해될 리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삶’의 진리가 아니다. 인간을 넘어선 지구, 지구를 넘어선 태양계, 태양계를 넘어선 갤럭시, 갤럭시를 넘어선 우주를 만든 신이 만든 진리가 그렇게 어설플 리가 없다.
삶의 진리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문맹의 노인도, 대학의 교수도, 후진국의 홈리스도, 대기업의 임원도, 백수의 30대도, 앞 못보는 맹인도, 멘사의 영재도, 주인없는 개 한마리도, 그리고 나도.
삶의 진리는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기억해내야 할 대상일 지도 모른다. 영혼이 있는 생명이라면 이미 가지고 태어났을테니까. 마음에 귀기울여 기억해내기만 하면 된다.
좋은 리더가 교육과 타인에 의해서만 만들어질리가 없다. 함께 살도록 만들어진 생명체가 그 방법을 모른 채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누구나 삶에서 리더가 필요하고 누구나 리더가 되는데, 그 방법을 특별히 재능있는 사람만 안다거나, 누군가에게 배워야만 안다는 것은 숨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만큼이나 말이 안된다.
이런 생각은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내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리더십을 가르쳐주는 자로서가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타고난 리더십을 일깨워주는 자. ‘개발’의 다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인간이 가진 리더십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 그게 내 역할은 아닐까.
새로운 시대의 뉴 리더십은, 수천년, 수만년의 역사에서 보면 새로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더 인간답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 같이 그렇게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게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런 리더십을 원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