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암센터 카페.
CT 검사를 기다리며 아버지 폰으로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5년 전, 아버지는 서울대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완치가 결정되는 올해, 마지막 검사에서 폐암 소견이 나왔다. 정확한 결과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담당 교수님은 폐암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입원 검사가 필요하대서 예약도 해 높았다.
5년 전 아버지의 위암 수술을 케어하면서 알았다. 조기에 발견 후, 가족들의 관심만 있으면 치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폐암은 위암보다 리스크가 크다지만 당사자나 가족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결과를 마주하면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아버지와 함께 할 시간이 유한하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실감나서다. 그 시간을 소홀히 여긴 게 후회되고 미안해서다. 아버지가 쉬는 주말에도 나는 방문을 닫고 일하는 게 다반사였고,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 식사마저 내 방에서 혼자 할 때도 많았다.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적은 없었지만, 딱히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한 적도 없다.
지금과는 달리 젊고 표정도 풍부했던 40대의 중반의 아버지는,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일하는 분들과 비슷한 나이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 하지만 아버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가족을 위해서만 사셨다.
어릴 적에는 집에서 호떡도 만들어 먹고 배드민턴도 같이 쳤는데, 남매의 머리가 커지면서 그 시간도 점점 사라졌다. 아버지가 위암을 선고받기 전에는 두어 달에 한번 같이 밥 먹기도 어려웠다.
나는 왜 그 시간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고 있었을까. 아버지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한다는 걸, 어쩌면 그 무엇보다 짧게 남았을 지 모를 그 시간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이렇게 카페에 앉아서 같이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이 시간을, 나는 무엇을 위해서 미뤄두고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오징어 게임’의 딱지치기 장면을 보는데도 계속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CT를 찍는 동안 가족 단톡방에 메세지를 보냈다. 동생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먹먹한 목소리로 언제 결과가 나오냐고 물었다. 파리에 있는 남편과 프랑스 가족들도 메세지를 보냈다.
앞으로 받을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아니기도 하다. 앞으로 나의 관심사는 단 하나.
앞으로 어떻게 아버지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아버지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그게 전부다.
당장 주말에 잡아놓은 미팅부터 취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