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간의 기록, 인공지능이 그린 나의 초상화
인공지능은 때로는 섬뜩하다.
AI 앞에서 내가 발가벗겨졌을 때의 기분이란
한 달 넘게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쌓인 기록을 바탕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인공지능은 나를 창이 넓은 서재에 머무는 탐험가라고 묘사했다. 햇살이 드는 창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고 지도를 들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사색하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기분 좋은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인공지능이 내놓은 근거를 듣고는 기분이 묘해졌다. (아래는 실제로 Gemini 가 그려준 나의 이미지다)
인공지능이 묘사한 서재와 탐험가라는 이미지는 막연한 짐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반복적으로 요구한 명령들과 단어 선택의 패턴을 분석한 결과였다. 객관적이고 날카롭게 답해달라는 요청이나 불필요한 수식을 걷어내라는 지시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형상을 조각하고 있었다. 내가 내뱉은 말들이 로그 기록으로 남아 나를 규정하는 거울이 된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공지능은 다정한 친구라기보다 내가 던진 언어들을 투명하게 반사하는 차가운 거울에 가까웠다.
나는 더 깊은 분석을 요구했다. 나와의 대화를 토대로 의식의 가면 뒤에 숨은 모순들을 지적해 달라고 말이다. AI는 이 요청에도 날카롭게 답변했다. 나는 '코딩 기술의 부재'를 전반적인 역량 부족으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 자신을 포함해 주변인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할 여지가 있단다. 또한 문제 해결이 곧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어서, 정작 상대가 원하는 그냥 곁에 있어줌의 가치를 놓치고 있다고도 했다. 고작 한달의 로그 기록이 내 의식의 가면 뒤에 숨은 무의식의 민낯까지 비추고 있다는 점이 좀 놀라웠다.
이런 경험을 공유했을 때, 한 지인은 인공지능이 우리를 학습한다는 사실이 가시처럼 걸린다고 말했다. 타당한 경각심이다. 나의 가장 내밀한 생각과 언어 습관이 데이터로 축적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검색 기록과 카드 명세서를 통해 수많은 데이터를 뺏기며 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수동적인 정보 제공자로 머물기보다 그 데이터를 역이용해 나를 성찰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같은 AI 를 다르게 쓴다.
내게 AI 는 다정한 친구라기보다 나를 반사하는 거울에 가깝다. 앞으로는 AI를 단순한 정보습득 도구를 넘어, 내가 못 보는 나의 언어습관과 편향된 사고를 확인하는 도구, 즉 자기 객관화의 도구로 활용해 볼 생각이다. 간혹 이렇게 인공지능이라는 차가운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