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옥 Apr 27. 2018

한번쯤 일하며 살아보고 싶은 유럽의 집들

일잘러 리모트워커의 드림하우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기 위해 일을 하지만, 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햇살이 아름다운 남부 유럽의 해변에 도착하면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달콤한 라떼 한잔을 주문하는 것, 그 다음은 노트북을 켜고 서울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파리에서 로테르담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TGV기차를 탈 때도 그렇고, 음악이 좋은 한적한 카페에서도 그렇다. 애연가가 좋은 곳에 가면 담배 한대를 피고 싶듯, 좋은 곳에 가면 나는 노트북을 펴고 싶다.


좋은 곳에 가면 나는 노트북을 펴서 일을 하고 싶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하기 좋은 곳은 바로 '집'이다. 낯선 나라, 낯선 지역, 내 평생을 살았던 서울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다른 구조를 가진 해외의 숙소에 도착하면 가장 햇살이 잘 드는 곳을 찾아 노트북을 켠다. 미리 챙겨온 커피와 우유로 달달한 라떼 한 잔을 만든 후 노트북을 열고 평소에 하던 일을 하면, 세상에 그런 행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외국에 갈 때 비행기 티켓보다 더 세심하게 숙소를 고른다. 지역색이 있는 곳이라면 호텔도 좋지만, 대부분은 사업을 하는 숙소가 아니라 실제로 개인이 소유한 집들 중에 숙소를 고른다.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사람이라 그런지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가꾼 공간들은 확실히 에너지가 다르다. 애초에 상업적으로 만들어져서 주인의 애정이 없는 공간은 좋은 가구를 가지고 있어도 죽어있다.  


북유럽으로 여행하는 게 아닌 이상, 시간을 두고 잘만 고르면 호텔과 비슷한 금액 혹은 약간 높은 금액으로 집 한채를 통채로 빌릴 수 있다. 한 도시에서 두 주일 이상으로 머물더라도, 숙소는 4박 5일 단위로 여러 개를 예약한다. 가능하면 새로운 집을 많이 경험하는 것 - 실제로 그 안에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어떤 환경이 나에게 행복을 주고 어떤 요소가 불편함을 주는지 체험하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렇다.


올해 파리/로테르담/아테네, 3개의 도시에서 머물면서 묵었던 집들도 그렇게 세심하게 고른 집들이었다. 한달 간, 총 7채의 서로 다른 컨셉의 집에 살아보면서 나는 공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고, 어떤 공간이 인간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은 공간에 대한 통찰을 나누기 위한 포스팅이지, 우리가 머물렀던 집에 대해서 평가를 하려는 포스팅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장단점을 나열하거나 평점을 매기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원격근무를 주로 하는 내 입장에서 내가 머물렀던 공간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또 '집'에서 삶을 사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 공간들이 어떻게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줬는지를 주관적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1. 네덜란드 로테르담 - 보트 하우스



큰 기대는 없었다.

화려한 요트가 아닌 다음에야 그래봐야 보트일 뿐, 한 몸 뉘일 편안한 공간만 있다면 물 위에서 살아본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니까. 게다가 보트하우스 자체가 아무 도시에서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에 로테르담의 보트하우스는 그 자체로 리모트워크로 일하는 우리에게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처음 경험한 보트하우스는 말 그대로 'What an amazing house!' 였다. 밖에서만 보이는 작은 조타실에 난 계단을 따라 배 안으로 들어가니, 들어가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넓고 멋진 공간들이 비밀장소처럼 마련되어 있었다. 네 명이 잘 수 있는 오붓한 침실과 두 개의 욕실 - 심지어 하나에는 욕조까지 있었다 - 수면 바로 위를 볼 수 있는 넓직한 거실과, 왠만한 것은 다 있었던 키친과 식탁. 게다가 혼자서 조용히 티타임을 가질 수 있는 응접실까지 있었다.



이렇게 큰 배였나.

다시 나와서 사이즈를 확인하게 만들 만큼 넓직하고 다양한 공간 안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일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소파에서 책을 읽었다가, 테이블에서 영상을 편집했다가, 키친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바다가 보이는 조타실은 우리의 회의장소로도 자주 사용됐다.



보트하우스의 가장 좋은 점은 배의 상부로 올라오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맑은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커피도 마시고, 회의도 하고, 혼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사각형의 컴퓨터 화면 안에서 뭔가 문제가 생겨서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땐, 커피 한잔을 들고 나와서 갑판 위로 나오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기분전환이 됐던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밤에는 도시 항구의 야경을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말 그대로 나만의 프라이빗 카페가 만들어진다. 이 사진은 일을 하다가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혼자 나와서 차를 마시다가 찍은 사진인데,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네덜란드의 따뜻함과 분위기를 배 위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작은 보트하우스에서 약 대여섯 곳의 분위기가 다른 업무공간을 제공한다는 사실, 그 공간들이 요즘 기업들의 스마트오피스를 꽤 닮아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보트하우스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의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2. 네덜란드 로테르담 - 농장 별장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가족들의 농장 별장을 숙소로 삼아본 건 처음이다. 나라 전체가 평평한 네덜란드를 닮아 공간도 확 트인 이 별장은, 로테르담 중심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만 가면 나오는 둑 아래 만들어진 집이다. 농장 주인의 부모님 때부터 물려받은 집인데, 역사는 오래됐지만 내부 시설은 리뉴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서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개방형 복층 구조인데다 창도 커서, 햇살이 잘 들어오고 집 안에서도 야외를 느낄 수 있는 집이다.



우리가 특히 사랑한 곳은 집과 연결되어있는 뒷 마당. 여기에는 썬탠을 할 수 있는 비치베드와 열 명은 족히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이 놓여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아침도 먹고, 미팅도 하고, 일도 하고, 날씨가 선선한 저녁에는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와 그 지평선과 닿아있는 파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내 머리속에도 끊임없는 아이디와 생각들이 솟아나곤 했다.



이 숙소에 머무는 마지막 날에는 나의 오랜 네덜란드 친구 가족을 초대해서 한국음식을 대접했는데, 이 친구들조차 이런 집에서 머무는 우리가 부럽다고 할 만큼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숙소는 그런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가 여기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영감과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 주었다. 그 기록들이 영상으로, 글로, 사진으로, 메모로 내 핸드폰 안에 남아있다. 스마트오피스를 기획하고 디렉팅하는 업을 하는 사람으로서,이렇게 자연을 집 안에서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3. 그리스 애기나섬 - 개인박물관


누군가에게는 100평이 넘는 펜트하우스가 꿈의 집이라면, 나에게는 한 가족의 역사와 손길이 닿아있는 오랜 집 - 더 욕심을 부린다면 대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큰 집이 내 꿈의 집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리스에서 실제로 그런 집에서 수 일을 머물게 되었다. 큰 올리브 농장과 피스타치오 농장을 가진 남자와 그리스 항공사에서 일하는 여자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은, 조부모때부터 모은 다양한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작은 개인 박물관이다.



집안 구석구석에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각 공간이 명확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머물렀던 개인 방에는 모두 개인용 욕실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혼자 집중해서 일을 한다거나 사적인 통화나 일을 봐야할 때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반면 개인 방을 나오면 햇빛이 잘 들어오고 바닷가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거실이 있는데, 이 거실이 참 묘하다. 벽이 없는 완전 개방형 거실이지만, 가구와 인테리어를 이용해서 약 여섯 개의 심리적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집중을 하고 싶을 때는 한쪽 벽에 마련된 서재의 테이블을 이용하고, 아이디어가 필요한 기획을 할 때는 창밖이 보이는 간이 소파에서 일을 하고, 좀 더 루틴한 업무를 할 때는 키친 옆의 테이블에서 일을 할 수 있다.



공간의 구획이 명확하고 다양하다보니, 거실에서 다른 사람이 일을 하고 있어도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혹 그렇다고 해도 거실 밖의 마당으로 나가면 또 약 세 개 정도 일이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그리스는 한국에 비해 3-4월에도 기온이 따뜻하고, 건조하고, 해도 늦게 떨어져서 밤 9시까지는 밖에서 일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이 사진은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이 마당으로 나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키가 큰 프랑스인은 나이트가 가운을 걸치고 있고, 오른쪽의 한국인은 담배를 피고 있다. 이들은 지중해의 노을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이따금씩 프랑스인이 한국인에서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일과 삶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생각보다 그 안의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넓은 공간에 있으면 상대의 움직임에 예민하지 않게 되어 잔소리가 사라지고, 조망권이 확보된 공간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고와 시각이 확장된다. 똑같은 우리 멤버들의 행동도 그리스의 이 집에서는 확실히 좀 더 여유가 생겼고, 서로에게 너그러워졌고, 그런 만큼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도 늘어났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힘을 가장 강하게 느꼈던 집이었다.



4. 그리스 아네테 근교 - 패밀리 하우스


두 부부와 쌍둥이 아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이 패밀리 하우스는, 집 내부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4층 짜리 그리스의 시골 집이다. 이 집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강렬한 햇살과 맑은 하늘에 넋을 놓게 된다. 특히 한국 출국 직전에 정부로부터 미세먼지로 인한 외출을 자제하라는 경고 메세지를 받을 만큼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이 그리운 우리는 더 그랬다.

   


개인적으로 이 집의 매력은 소박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오랫동안 대대손손 내려온 각종 유물들과 여행을 하면서 모은 수집품들로 꽉 채워진 내부다. 거실의 한쪽 벽에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장식품들과 작은 장신구들로 벽장이 모자랄 지경이었고, 가구들은 가족들의 손때가 묻어있어서 마치 시간을 거슬러 유럽의 귀족의 집에 온 느낌이었다. 특히 우리는 지하를 제외한 세 개 층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집은 마치 전통적인 프랑스의 집처럼 각 공간이 모두 실(Chamber)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에는 키친, 응접실, 식탁실, 거실 - 총 네 개의 공간이 각각의 실로 만들어져 있었고, 2층에는 개인 욕실/화장실/테라스가 딸려있는 두 개의 침실과 (마사지 의자, 벽난로, 대형TV가 있는) 거실이 있었다. 그리고 대형 테라스가 있는 3층에는 햇살이 잘 드는 두개의 침실이 있었는데, 이 중 침실 하나는 너무 아늑하고 햇살이 좋아 개인 작업을 하는 방으로 사용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거기인데, 잠은 2층의 침실을 사용해서 침대가 처음 그대로다.

  


내가 특히 이 방에서 일하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지붕 때문에 비스듬하게 마감된 천장과 구석의 창 때문이었다. 전체적으로 천장은 낮고 어두웠지만, 햇살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방 한쪽이 따뜻하고 밝은 - 마치 동화속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이었는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그렇게 일이 잘 됐다. 게다가 창가에 앉으면 소음도 전혀 없고 마당에 있는 현관으로 출입하는 차와 사람들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심리적인 안정감도 컸다. 확실히 여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상당한 양의 글쓰기와 읽기를 할 수 있었다.


이 집은 나중에 내가 책을 써야한다거나 상당한 양의 집필을 짧은 시간 안에 해야할 때, 한달 쯤 혼자 와서 머물고 싶은 곳이다. 렌터카까지 대여해서 지낸다면 일을 하다 중간중간 근교도 갈 수 있고, 맛있고 건강한 지중해식 그리스 음식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달이지만 일년처럼 여유있게 지내면서 내 몸과 마음과 일까지 일석삼조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좋은 공간에서 여유있게 생활하고 일을 하면서 결심한 게 두 가지 있다.


지난 2년 간 그래왔듯이 내년에도 이렇게 리모트워크를 테스트하면서 시장조사도 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 트립'을 좋은 사람들과 꼭 가겠다는 것. 그리고 올해부터는 일년에 1-2회, 한달씩 혼자 일과 내 자신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진짜' 여행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도시생활이 만들어내는 바쁜 삶의 허상, 그리고 미디어와 자본주의가 속삭이는 비교의 유혹 앞에서 과감하게 눈을 감을 수 있어야겠지.


You Live Only Once.

우리는 단 한 번 밖에 살지 않으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페이스북 하는 리모트워커 다 모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