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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Apr 20. 2017

기지개를 켜다

옥탑방 지붕 아래 삼각형의 우주


종로구 부암동은 흔히 '부촌이다' '예술가의 기운이 돈다' '기가 세다'라는 소문들로 무성한 동네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이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이렇게 마운틴 트리오로 둘러싸여 그 중앙에 차분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지역적으로 신비로운 동네이자 사실상 신기한 게 많은 동네인 건 분명하다.

이를테면 한 겨울 부암동 언덕이 영하3도 추위로 동파를 염려해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둘 때, 바로 언덕 아래 경복궁역의 기온은 영상이라는 것과 광화문 일대 대규모 시위가 있는 날이면 데이트족으로 붐비던 부암동 언덕이 언제 그랬냐는듯 인적없이 고요해 진다는 것! 이럴 때마다 부촌은 커녕 황량한 시골마을 같기도 한 동네가 바로 이 부암동이다. 군데 군데 한옥과 더불어 폐가가 있기도 하고, 최신 트랜드 카페와 함께 쓰러져 가는 오뎅집의 문턱이 나란히 닳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 이 신비롭고도 신기한 부암동으로 이사를 온 지도 어느 덧 7개월 째로 접어들었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려고 이 집, 저 집, 비어있는 집들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날에 부동산 중개인이 나에게 '아마 백프로 별로라고 하시겠지만 재미삼아 보실래요?'했던 그 집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될 줄이야. 

길 가에 핀 들꽃마냥 투박한 골목 한 켠에 서 있던 노란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깨끗한 복도를 세 번 지나 맨 꼭대기 옥탑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 옥탑의 문이 열리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천장이 낮은 삼각형태의 탁트인 공간이었다. 첫 눈에 나는 '빨강머리 앤이 일기를 쓸 것 같은 연극무대 같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껏 살아보지 못한 방구조에 매료되었다. 이런 뜻밖의 반응에 부동산 중개인은 그동안 이 곳을 보고 간 사람들이 천장이 낮고, 지붕모양대로 삼각형이라 온전한 가구를 놓을 수도 없고, 또 코너로 가면 허리를 굽혀야 하는 비일상적인 생활이 불편하다며 꺼렸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짚신도 짝이 있고, 제 눈에 안경이라고 했던가! 내가 생활해야 하는 '집' 또한 주어진 인연이라면 나는 제대로 지 짝을 찾았다 싶었다. 

혼자 산 지 어언 4년 째, 언젠가는 싱글라이프가 청산될 거라며 일부러 가구를 들여놓지 않았고, 키가 작은데다 심지어 좌식 생활을 즐겼던 내게는 높이가 있는 생활소품들이 없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삼각형 옥탑방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 그런데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보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보통의 사각공간이 아닌 삼각공간은 생활할 수록 불편함이 하나씩 내게 발각되고 있었다. 

그 중 크게 세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창문올리기고, 하나는 허수의 수납공간이며 나머지 하나는 기지개를 켤 수 없다는 점이다. 비스듬한 지붕으로 난 창으로 매일 아침마다 햇살이 비추고,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밤의 낭만을 주지만 무거운 창을 위로 젖혀 열고 닫아야 하는 일련의 행위는 생각보다 노동에 가까웠다. 때로 팔에 힘이 없는 날에는 자칫 창을 놓쳐 손가락이 찧일까봐 온 힘을 다해 열어젖혀야 한다. 심지어 새 창틀 공사로 한 쪽 창만 백 만 원이 넘는 고가여서 그만큼의 무게도 늠름하다. 또 공간의 모서리가 네모각이 아닌 점점 좁혀지는 삼각 구조여서 상자나 물건을 수납하기에 버려지는 헛공간이 많고, 그래서 전체공간에서 수납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만큼 생활공간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기지개를 켤 수 없다는 불편함이다. 

물론 나는 키가 아담하고 집 안에서 보다 외부에서 일상을 보낼 일이 더 많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향으로 갈 때 내 머리 위에 장애물이 있는지 늘상 조심하거나 팔을 뻗을 때 미리 신경써야 할 무언가를 의식하는 일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당연해져야 한다. 한 번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가 바로 곁에 있는 창밖을 내다 보고 '아, 상쾌해'하며 돌아서는 순간 비스듬한 천장에 난 창문턱으로 머리를 쿵 박았다. 또 한 번은 졸음을 깨려고 이부자리에 앉아 기지개를 켜려는데 한 쪽 팔이 굽은 상태로 이미 천장에 닿아 있었다. 기분에 따라 어떤 날엔 울컥 짜증도 나고, 어떤 날엔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자비롭게 새어 나오곤 한다. 


사실 이러쿵 저러쿵 집에 대한 험담아닌 험담을 늘어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게 아직까지의 생각이다. 처음 이 집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재미난 공간에서 살아보겠나 싶은 생각이 컸는데 앞서 언급한 일상의 불편함이 내게는 어느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배우의 실수처럼 유쾌하게 느껴진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 공간에서 내게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간이 주는 운명이란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인생을 단박에 바꿔놓는 대단한 운수보다는 집과 나의 궁합으로 빚어지는 운명공동체, 통합기운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공간에 내 호흡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소소한 삶의 변화들이 그것이다. 나는 하늘과 좀 더 가까운 옥탑이며,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삼각지붕 아래에서 두 팔이 뻗어 닿는 기지개가 아닌 매일 새로운 시작을 켜고 있는 게 아닐까. 

부암동 언덕의 삼각형 지붕 아래 내가 사는 우주에는 어쩌면 부딫히는 일상에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별이 되어 빛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멘트는 너무 간지러운가? 아무렴 어떤가. 글을 마무리 지으려 기지개를 켜는 방금도 나는 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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