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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Apr 30. 2017

마리안느와 마가렛

43년 간의 희망 기록

소록도 성당

얼마 전 프리랜서인 내가 유일하게 소속되어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2017 방송작가 소재발굴 국내 워크숍_고흥'이란 지극히 심심한 제목으로 온 그 메일은 작가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정부나 기관, 지자체에서 시도하는 팸투어형 워크숍에 관한 내용이었다. 협회 등록한 지 올해로 벌써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이런 형태의 워크숍에 참여한 경험이 없다. 사실 평일에 떠나는 여행이 대부분이어서 일정을 맞추는 게 쉽지 않거니와 개인적으로 그동안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솔직한 이유다. 그런데 '뜻이 주어지면 저절로 이끌린다'라고 이상하게도 이번 메일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심지어 적극적인 마우스 클릭으로 안내문구를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단어는 '소록도'.

그동안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고작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것과 성직자들이나 선한 봉사자들이 드나드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아픈 사람을 위로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당시 참혹했던 삶의 환경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나의 환상이 그랬다.

그런데 마침 이번 팸투어의 일정 중 소록도가 있는 것이다. 나는 고민 없이 신청서를 제출했고, 첫 시도의 성공률은 100%였다. 그렇게 소록도가 있는 전라남도 고흥으로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소록도의 일정이 워낙 첫날이었는데 그곳을 지키는 주임신부님의 사정으로 맨 마지막 날로 변경된 건 고흥으로 출발하는 아침에 알게 되었다. 내심 더 많은 여운과 깨우침을 가져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일정인 게 다행스러웠다. 전라남도 고흥. 이곳의 풍부한 먹거리와 상상치 못했던 뛰어난 절경들은 한 숨도 허투루 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나 산해진미 중의 최고만을 대접받아서 혼밥이 일상인 내게는 몸보신 투어라고 해도 충분했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참고로 전라남도 여행은 이전에 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관련된 정보를 몰랐는데 고흥은 동남아 국가나 제주도를 연상시킬 만큼 이국적인 절경으로 가득하다.)

소록도 성당에서 본 전경

소록도. 섬의 지형이 아기 사슴의 얼굴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너무나 예쁜 이름이다. 그에 맞게 소록도를 두른 청아한 아쿠아 블루색의 바다와 이 섬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4월의 초록 나무들은 지상낙원이거나 무릉도원이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눈과 귀, 코와 입 모든 감각이 보고 듣고 숨을 쉴 때마다 깨어날 지경이라면 믿어줄까. 정말 그랬다. 배를 타고 소록도에 도착해 버스로 긴 언덕을 올라가면 '한센인 마을'(*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격리 지역)이 나오는데, 이곳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어서 보통의 경우 관광객에게는 마을 입구까지만 공개된다고 한다. 저 아래 펼쳐진 비취색의 바다 외에 아무것도 없는 무심한 언덕길이지만 입구부터 매우 슬픈 사연이 스며있었다.


'수탄장'이라고 불리는 마을길은 과거 이곳에 격리되었던 한센병 환자들과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구간이었는데, 아무리 피와 살을 나눈 가족이어도 전염이란 공포는 이들을 절대 닿을 수 없는 거리로 벌려놓았다. 한 날 한 시에 각지에서 몰려든 여러 가족들은 환자인 자식과 남편, 그리고 부모와 평행으로 마주 서서 그저 눈으로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행여 말하면 공기로, 바람이 불면 그 결에 병이 옮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대목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곁에 가고 싶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지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흉측하고, 공포스러운 병이어서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던 그때는 그렇게나마 가족과 상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니 나는 그저 먹먹할 뿐이었다.  

 

중증 한센병 환자 격리병동

수탄장을 시작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동안 작은 병원이나 환자 전용 목욕탕 등 여러 시설들을 볼 수 있는데, 43년 전 이곳에 온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맨손으로 일군 것들이라고 한다. 의학 전문가들도 마스크와 장갑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환부를 살폈던 그때, 두 여인은 환자들을 자식처럼 어루만지고 소독하며,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가족에게 버려지고, 성치 않은 신체의 고통으로 닫혀버린 환자들의 마음까지 치유하기 위한 두 여인의 노력은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로 대단했다.


천사와 같은 두 여인은 43년 동안 한 결같이 이곳에 머물다가 10년 전, 몇 문장의 글이 적힌 편지 한 장을 남겨놓고 몰래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70대가 되어 이제 노쇠해진 건강상태로 마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에 조용히 떠났다는 게 이유라니! 이 사연을 들려주던 소록도 성당의 김연준 주임신부님은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세상에 없는 사랑을 실천한 두 여인을 그토록 초라하게 보내고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던 한국에 대한 원망이 들어서라고 설명해 주셨다. 함께 한 작가들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업적들과 10대였던 소년환자가 평범한 50대 남성이 되어 그녀들과의 추억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고, 나 또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어 우리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살았던 사택을 방문하기로 했다. 김연준 신부님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녀들이 살던 집의 형태를 그대로 복구해 놓았다고 했다.

소박하고 가지런한 집, 그 숭고한 삶의 공간에 내 발을 딛었을 때 나는 저절로 작아졌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자기의 고단함은 잊고 환자들을 향한 가슴앓이만 해왔을까'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깊이가 느껴져서 고개가 숙여졌다. 벽에 붙은 종이에 '무(無)'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비움과 받아들임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 그녀들의 강인함이 가만히 와 닿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사택

'희망은 드러나야 하고, 희망은 느낄 수 있어야 하며, 희망은 살 수 있어야 하고 우리 모두는 희망을 살아야 한다'라고 남긴 마리안느의 글에서 나도 가만히 '희망'을 생각해 봤다. '희망한다'는 건 내게 '바람'과 같았다. '바라는 것'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것'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건 성취이지 희망과는 달랐다. 희망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마음의 상태,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스스로 갖추고 베푸는 것이었다.


현재 소록도 성당의 김연준 신부님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히스토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역시 세상의 참빛은 자연히 밝혀진다고, 어떻게든 참선은 드러나게 되어있나 보다. 신부님의 발품과 노력으로 국내 손꼽히는 영화제작자인 김태용 영화감독의 도움을 받아 다큐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상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익명의 한센인들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겠다며 매일 같이 후원금을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귀한 후원금으로 신부님은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세우게 되었고, 극빈국의 병든 환자들을 치료하고 교육하는데 쓸 준비를 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모두가 알아야 할 '사랑이야기'는 어느 남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제일 낮은데서부터 실천하는 인간의 지극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따라야 할 세상에서 가장 벅찬 사랑이 아닐까!


다큐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영화는 지난 4월 27일에 개봉해 지금 상영 중이다. 다큐영화는 비주류 장르라는 인식 때문에 좋은 상영관에서 오랫동안 개봉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남지만 상영기간 동안 내가 이 페이지에 담지 못한 무수한 사랑과 희망이야기를 꼭 확인해봤으면 한다.


계절이 또 바뀌니까, 세월은 또 지나가니까 하루 먼저 또 하루 빨리 모두가 공감하고 따를 수 있길 바란다.   


- 관련 정보 ; www.lovemama.kr

  사단법인 마리안 마가렛 / 061.84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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