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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Apr 30. 2017

사랑한다, 하지 못한다

자격과 자존에 관한 사색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작가 노희경의 어록이다. 어록이라고 표현한 건 그만큼 짙은 공감의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까? 사랑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걸까? 사랑의 대상은 사회적인 기준에 맞아야 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단연코 'No'. 두 번을 물어봐도 나의 대답은 같다.

하지만 나와 반대로 대답하는 사람의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으므로.

어쩌면 사랑은 자격과 자존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한 때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며 지냈던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처음 언급했던 세 가지 질문에 모두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한마디로 그 언니의 처지(處地)는 처연한 지경이였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뜨겁게 사랑했고, 관계가 정리된 후에도 홀로 애착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으로 되돌리지 못해 매일 좌절했다. 끝내 자신은 사랑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했다. 나는 위로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절실하게 사랑한 마음에 난 상처는 안타깝지만 그 절실함이 두 사람 관계를 떠나 스스로를 수렁으로 떨어뜨리는 건 일종의 집착이라고 생각했다. 집착은 집착이고,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 언니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그릇된 인연을 정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새로운 사람으로 위로받고 치유되어 시쳇말로 과거를 덮고 다시 보통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랑을 듣는다. 내 이야기도 그 속에 섞여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사랑은 때로 무용담이 되기도 하더라.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할 때, '정도'를 말하곤 한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또 서로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할런지. 나 또한 한 때 사랑의 정도를 운운하며 실망하고 고민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이제 '정도'보다는 '깊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랑의 '깊이'는 우리에게 '정도'보다 더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얼마나 사랑하는가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가! 그렇다. 진심은 참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심이나 걸림없는 온전한 마음이다. 자유. 나는 이러한 상태를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로운 사랑은 방탕한 연애나 무분별한 애정이 아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조건이나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며,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람의 존재 그대로를 흡수하면서 곁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결코 쉽지는 않다.


단순히 마음이 설레고 몸이 짜릿해지는 게 아니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순수하게 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고마운 마음, 그리운 마음, 미안한 마음과 심지어 밉고 못마땅한 마음 마저도 애정이 없다면 가질 수 없는 감정인지라 이 모든 감정이 느껴지는 대상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이다. 앞서 정도와 깊이에 대한 언급도 이러한 감정들을 두고 꺼낸 말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나는 준비된 것이 없어서 그 사람을 사랑할 자격이 안돼,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완벽한 사람을 만나야지.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거 같애' 또 다른 누군가도 말했다. '내가 과연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 잘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그 사람의 더 좋은 기회를 놓치게 하는 건 아닐까'라고. 준비된 것은 자격이나 정도에 관한 불안이었고, 해줄 수 있는 것은 자존이나 깊이에 관한 의심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불안과 의심은 결국 이미 자유롭지 못한 사랑이 아닐까. 스스로의 기준에 얽매여 자신을 철조망에 가둔채 날개 잃은 감정으로 상대방을 쫓는 상태인 것이다.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면 절대로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의 나처럼 자존감이 결여된 상태가 된다면 신나게 달려가던 사랑을 멈추겠는가? 그런 대상이라면 애초에 포기하는 게 서로 덜 상처받고 힘들어지지 않는 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해 지켜볼 수 있는 사랑. 그 사랑에 어떤 자격과 얼마만큼의 자존이 갖춰져야 할까. 과연 그걸 갖추고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완전히 갖춘 사람이 완성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안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사랑이 소유나 집착, 구속이나 욕심과 정반대편에서 말그대로 '자유로운 사랑'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을 하지 못해 외로운 사람들은 어쩌면 마음의 자유가 없는 상태일지 모르겠다. 마음의 그어진 빗금을 지우고, 마음을 붙잡는 넝쿨도 잘라내고, 쪼그라든 마음에 입김을 불어넣어 자유롭게 사랑하면 좋겠다.

사랑이란, 인생처럼 그저 자연히 흐를 때가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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