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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May 03. 2017

런던 프라이드 (pride)

지금 갖지 못했거나 그래서 당장 가져야 할 것

영화 '런던 프라이드(Pride)' 중에서


1985년 6월 29일,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운동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그 행진을 위한 전주곡쯤 되겠다. 영화에서는 동성애자인 주인공들이 LGSM(Lesbian&Gay Support the Minor)이라는 그들만의 크루를 만들어 정당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이 영화는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려내며 그동안 우리가 떠올렸던 그들의 어둡고 고립된 일상보다 훨씬 더 정의롭고 자주적인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갈등은 주저 없는 실행과 연합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존중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영웅심마저 심어주고 있다. 약간은 비약이 더해졌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평을 먼저 언급하자면 개인적으로 '아주 멋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본격적인 감상문을 써 내려가기 전에 잠깐 이 영화의 개봉 시기를 한 번 짚어본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3년 전부터 이미 영국의 수작 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대통령 선거 시즌에 개봉되었다는 건 우연일까? 엉뚱한 의미부여이겠지만 얼마 전 대선 토론에서 후보자들이 동성애 인정, 불인정을 놓고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살짝 개인적 의심의 미소를 머금어 본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 영화에서 성소수자들은 사회의 불편한 차별을 감당해야 하는 역경을 딛고 결국 '인정'이라는 목적에 달성한다.  


1984년, 영국의 석탄노조 장기파업 당시 정부와 대립 중인 광부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동성애자들이 적극적인 모금운동에 나서는 게 영화 '런던 프라이드'의 출발이다. 거동이 느릿한 할머니가 무심코 받은 전화 한 통으로 주인공들은 광부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다. 아무도 반기지 않고 오히려 경멸의 시선으로 이들을 흘겨보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이 물러서지 않고 자신들의 의지를 이어간 건 바로 이 대사 한 마디였다. '전쟁 중에 있는 줄도 몰랐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감독은 상련(相憐)이란 공감을 원했던 걸까? 이 영화에서는 한 순간도 '의리와 우정'에 대한 코드를 놓지 않는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마치 '여기 있다'하고 손을 흔들어주듯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관계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결국 서서히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 LGSM 멤버들과 광부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편견과 오해에서 무장해제된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진부한 전개지만 그만큼 인생에서 우리가 늘 겪고 지나가는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역시 사람의 관계는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서로 맞닿아야 온전한 관계로 남는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더해진다. 등장인물 모두가 처음 세운 목적을 잃지 않고, 한 결 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용기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반대세력의 방해와 억측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순수와 열정으로 이들에 맞서 끝내 원하는 결실을 얻는데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 마지막 장면이 '게이 프라이드 행진(Gay Pride)'이었다. 자긍심을 걸고 나아갔던 LGSM 멤버들의 쾌거를 실제 영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종합시킨 것이다. 사실 이쯤에서 나는 영화의 감동에 반하는 냉정심을 불러왔다. 성공적 결말의 쾌재에 약간은 부정적인 시선 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동성애에 대한 미화, 영웅적인 포장 혹은 인정에 대한 세뇌 같았달까!

  

영화 '런던 프라이드(Pride)' 중에서


동성애의 문제를 떠나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자긍심을 갖는다는 일은 점점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비교에 놓이고,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 위에 앉혀져 수시로 박탈감과 허무감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나를 마주 보지만 제대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긍심'이란 단어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스스로 존재한다는 건 어떤 환경이나 처지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든 아름다운 자체인데, 우리는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무리가 만들어 놓은 벽에 부딪혀 풀썩하고 주저앉아 버린 것 같다. 다시 마음을 일으켜 자신(自信)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조용한 시작은 어떨까. 나 역시 속절없이 달리는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자신에 대한 편견과 죄책감으로 지쳐있던 마음을 천천히 부축해 봐야겠다.       


각설하고 영화 '런던 프라이드'에서 보는 내내 내 시선을 강탈한 건 가구, 인테리어, 소소한 소품 등 그 시절의 영국 가정집 내부를 보는 재미와 상점, 간판, 도심 속 파티션 등 영국스러운 디자인 그리고 필름 사진 같은 레트로적 색감, 마지막으로 심장을 노크하는 로큰롤 음악이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내용의 감동은 잠시 미뤄두고 '이 네 가지에 관심 있다면 반드시 보시라' 말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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