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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May 06. 2017

인생 여행자

목적 없이 목적을 향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좋아하는 음악이나 어쩌다 듣게 된 좋은 음악들을 한데 모아두곤 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도 내 귀 에만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 때문에 나는 잘 이어가던 대화를 끊고 카운터로 달려가 제목을 알아내기도 하고, 반복되는 가사를 구구단 외듯 기억해 두었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 폭풍 검색으로 기어코 제목을 알아내기도 했다. 요즘은 시절이 좋아서 터치 한 번이면 알아서 음(音)을 캡처해주는 어플에 의지해 별 번거로움 없이 곡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모아놓은 곡들은 플레이리스트 폴더에 쌓아놓고 이따금씩 생각나면 한 곡씩 꺼내 닳도록 듣는다. 마치 어느 날 떠오른 그리웠던 누군가처럼 그렇게 시작된 음악은 그 날의 오프닝이자 클로징 음악이 된다. 들을 때마다 신기한 건 '들으면 들을수록 새롭다'는 것이다. 좋아서 모았고, 모아놓고 즐겨 듣는 그 음악이 들을수록 새롭다는 건 비단 그 음악에 꽂혀서만이 아니라 그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나의 감성, 컨디션, 기억과 향기가 서려있어서일 것이다. 빛바랜 어린 시절의 사진을 꺼내 보면 나인데 내가 아닌 것처럼 새롭듯이 말이다.


오늘도 10년이 훨씬 더 지난, 그러니까 과거 미니홈피 시절에 배경음악으로 올려놓고 들었던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Eye in the sky'가 생각이 났다. 나는 플레이리스트에서 그 곡을 쉽게 찾아 듣고는 내친김에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듣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15초 분량의 구간을 올려놓았다. 공감해주는 몇몇의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내 덕에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앨범 전곡을 플레이 중'이라며 덧붙여 'Days are Number'라는 곡을 들어보라며 권해줬다. 사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를 좋아하지만 그들의 모든 음악을 듣고 기억하진 않았기에 추천곡은 생소했다. 그런데 이 곡이 문제의 곡이 될 줄이야!

추천하자마자 곡을 찾았고, 듣자마자 꽂혀버렸다. 사랑이 시작될 때, 위장도 아니고 대장도 아닌 가슴속 어딘가에서 찌르르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노곤해진 심신상태였고, 빈 벽만 멀뚱이 바라보며 '이대로 저 벽을 뚫고 뻥하고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딱 그 순간에 이 곡이 내게 온 것이었다.


Alan Parsons Project : Days are Number :: youtube 청취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Alan Parsons Project)는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알란 파슨스와 에릭 울프슨으로 구성된 2인조 뮤지션이다. 1976년 앨범 [Tales Of Mystery Imagination]으로 데뷔했으며, 대표곡으로 'Eye in the Sky' 'Old & Wise' 등이 있다. 


영화도 그렇지만 나는 늘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정보나 자료를 찾아보지 않은 상태로 접한다. 사람이다 보니 선입견이 없을 수는 없고, 아무리 편견 없이 콘텐츠를 접한다 해도 무의식의 지배를 사람의 힘으로 거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접해야만이 진짜 내 감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는데 말이나 글 즉, 언어는 나라마다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성은 언어 없이도 충분히 교류가 가능함을 깨닫는다. 'Days are Number'라는 곡 역시 그랬다.

인생이 짧다는 제목대로 '살다 보면 어느 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거다'. 한마디로 지금을 즐기라는 메시지이다. 비틀스의 'Let it be'와 다를 게 없는 메시지다. 그 진부한 위로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내게 온 건 가사가 주는 에너지는 물론이고, 음악적 구성이 주는 힘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Charles de Gaulle Airport (샤를 드 골 공항)


가사의 시작은 트래블러의 삶으로 시작된다. 나는 '길 위에 있지만 같은 길에 있지 않은 사람', 나그네라는 단어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도 같은 삶은 없으며, 매일 반복되어 살아가는 것 같지만 단 한순간도 같은 적은 없었다. 산을 오르듯 시간의 발은 멈추지 않고, 초침 위의 우리는 늘 다른 세상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때로 목적을 다 이루고도 여전히 방황하는 이도 있고, 목적도 없이 가다가 우연히 그것을 만나는 이도 있으며 목적을 정하느라 정해진 시간을 다 써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방향도 끝도 없는 여행을 하는 인생 여행자였던 것이다. 가사에서 전해주듯 'Remember. Days are numbers. Count the stars. We can only go so far. One day, You'll know where you are (기억해. 인생은 짧아. 별을 세어봐. 우리는 단지 저 멀리까지 갈 수 있어. 어느 날 너는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거야)', 여행 중에 우연히 알게 되는 세상처럼 우리는 무심코 살다가 어느 날, 진정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지금 당장의 무엇들에 연연하고 고립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음악을 접하기 전, 바닥에 가까워지는 기분으로 벽을 바라보다가 이내 저 벽을 뚫고 멀리 우주로 흩어지고 싶다던 심정 또한 현실에 대한 연연함이었던 것이다.

나는 인생여행 중의 피로를 풀지 못해 방황이라는 근사한 단어로 자신을 포장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걷다가 풀린 끈, 비록 제 발에 밟혀 더럽혀진 그 신발끈을 스스로 고쳐 매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주저앉아 누군가 혹은 어떤 기회라는 것이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허황되게도 말이다.


'Days are Numbers'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인생 명곡이 되었다. 듣고, 또 들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마도 언젠가 또 마음이 지쳐갈 때쯤 내게 '가던 길, 그냥 가라'라며 자극을 주었던 이 음악을 찾게 될 것이다. 어쩌면 목적 없이 목적을 향하는 우리의 삶. 그 삶을 동행하는 인생 여행자들과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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