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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May 08. 2017

첫사랑을 사수한다

그 시절의 순수한 나를 찾아서


첫사랑에 대해 사색해본다. 사실 얼마전 내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그녀가 사색의 물꼬를 터줬다고 하는 게 맞겠다.


평소 에이양은 키가 크고 적당히 마른 근육의 몸매를 갖춘, 소위 여자라면 한 번쯤 시선을 줄만한 훈남을 좋아했다. 그녀의 이상형은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달라져도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기준이 더 또렷해졌다. 그러던 에이양이 그날 내게 '처음부터 (이상형이)그랬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과거 그녀가 성년이 된 그 해에 무척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에이양의 당시 첫사랑이며 그는 현재 정해놓은 이상형의 기준에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키도 작고 옷맵시도 그저 그랬고 다정다감하지도 못한 게 특히 제일 불만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그때는 그가 좋아서 어떻게든 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심지어 며칠 못 만나면 그게 그렇게도 서러워 울기도 많이 하고, 보고싶으면 당장에라도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기준이 생겼느냐고. 에이양은 대답했다. '그렇지않으면 그때처럼 내가 누군가를 맘껏 좋아하지 못할까봐.'

나는 조금은 황당하고 조금은 안타깝고 또 그 나머지의 조금은 이해가 됐다. 에이양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거였고,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이상형이라면 기꺼이 그럴 수 있다고 기준한 것 같았다. 그 시절 무뚝뚝하고 재미없었던 그에게 드러내보였던 순수의 열정을 다시 한 번 태우고 싶었던 것이었다. 결국 에이양은 그 시절 그 때의 자신을 되찾고 싶은 것이었다.

최근에 그녀는 그동안 철저하게 세워놓았던 이상형의 기준과 전혀 거리가 먼 어떤 대상에게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흔들릴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흔들린다는 것의 의미와 첫사랑이란 존재와 대상에 대한 지점에 대하여.


우리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건 그시절의 누군가를 잊지 못한다기보다 그 시절 나의 순정을 그리워하는 것이지 않을까. 살아오면서 몇 번의 사랑이 지나고나면 그때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때처럼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마도 그 시절 속에 있었던 누군가가 아니라 세월에 빛바래진 그때의 나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생애 처음으로 투명하게 사람을 향했던 나의 열기가 그렇고, 그 첫사랑이 바로 나여서 계속 그리워하고 잊혀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라는 고독한 말에는 아쉽게도 설득력이 없어보인다. 존재하는 모두가 다 그러고 있을테니까.


혹시 곁에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 당신은 지금 감정이 조금 지쳐있군요'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즐거움을 선사하면 위로가 될 것 같다. 나는 에이양에게 요즘 새롭게 설레고 있다는 그에 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었다. 그녀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즐기며 기대에 찬 얼굴로 방실거렸다. 실로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옛날,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들을 덧붙여가며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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