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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Jun 27. 2022

귀찮은데 하찮아지면 안 되는

나의 정신건강이야기 1.


인왕산 자락에서 본 풍경



4월의 끝으로 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봄이 무르익고 공기가 훈훈해지는 4월은 웅크렸던 겨울을 한 겹 벗어던진 가벼움의 계절.

묶인 발목을 풀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어디든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로 야외활동이 너그럽지 못했던 사람들은 당연했고, 겨우내 움직이기 귀찮았던 사람들도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여행지로 마음을 기웃거리는 그런 4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심을 들뜨게 만드는 이 계절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가 겪은 4월, 그리고 5월은 설렘과 리듬을 맞춘 바운스가 아닌 불안과 걱정, 우울의 바운스였다. 잔인하도록 불특정 하고, 무섭도록 생소한 그런 심장의 두근거림이었다. 웬만한 증상에 당황하거나 염려하는 성격이 아닌 나로서도 내 몸에 이상 신호가 오고 있음을 느낄 정도였으니.


평소 심리학과 철학 관련 글이나 영상을 즐기는 나는 초등학교 때 이미 장래희망이 '정신과 의사'였다. 그때는 '정신과'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던 때였고, 더구나 대통령, 의사, 선생님이 아닌 정신과 의사를 꿈꾸는 초등학생은 드물었기 때문에 나 역시 우리 반 친구들의 비웃음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이 후로도 정신건강에 관한 호기심은 그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전공할 정도로 공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주된 관심 사였음엔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절망적이거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에 스스로를 진단하고, 다스리며 문제를 해결해오는데 익숙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나를 객관화시켜 대화했다. 그러면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상처를 위로할 때 큰 도움이 되어왔다. 그런 내가 이번에 달랐다는 것이다.


언제나 자문자답 끝에 의지가 덤으로 따라오던 대화에 어느 순간 의지 대신 단념과 포기, 한숨이 따라왔다.

하염없이 내가 하찮아지고, 작아지고,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졌다. 언제부터 스스로 등을 돌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이미 한참 전부터 자신을 외면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현명하다고 믿었던 내 선택과 판단이 반복해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초심을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후회와 불만, 강박과 원망으로 뒤범벅된 감정상태는 마음에서 모자라 몸으로 번져갔고 결국 여러 진료과에 내 이름을 기록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렇기를 2년 남짓, 더 이상 나를 궁지로 몰아낼 수 없겠다는 다짐으로 과감하게 '정지'신호를 켰다. 그렇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 졌고, 당장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기간엔 도무지 이루지 못할 계획들도 줄줄이 리스트업 되어갔다. 정말 그랬다. 딱 6개월은 그랬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세고, 고집도 강한 내가 누구보다 후퇴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을 때, 현실이 주는 강박과 불안은 이전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강력했고 종잡을 수 없이 나를 좁디 좁은 궁지로 몰아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책에서 보고 배운 대로, 내가 겪고 경험한 대로, 내가 아는 한 스스로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오만이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이유 없이 울컥 눈물을 쏟는 건 기본이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간지러운 느낌이라고 표현했던 그 증상이 심장 불편증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워낙에 수면 건강이 좋지 않은 나였지만, 자고 싶어서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서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영상을 지겹게 들으며 별의별 짓을 다해도 도저히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정말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멍하니 앉아 있다가 꼼짝도 하기 싫어 다시 누웠고, 누구라도 내게 연락을 해오면 일부러 무음으로 돌려놓고 외면도 했다. 그러다 다시 밤이 찾아오면 겨우 마우스를 손에 쥐고 의미없는 클릭만 해대곤 했다. 여러 사람의 SNS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나만 빼고 다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좌절하기도 일쑤였다. 특히 그런 밤엔 잠을 못 잘 뿐 아니라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느 날엔 왜 사나 싶은 생각에 위험한 상상도 해봤다. 어차피 누구나 외로운 삶, 좀 일찍 외로움을 청산하는 것도 건강한 생각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5월이 왔다. 하나도 반갑지 않은, 하나도 기대가 없는 5월이지만 나에게는 다만 작더라도 변화가 필요했다. 환경을 바꾸면 좀 달라질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건물주의 제안으로 모든 세입자들이 이사를 결정했고 나 역시 그 뜻에 편승했다. 가볍게 알아보기 시작한 새 집은 마치 뭐에 홀리듯 후루룩 계약까지 진행됐고, 그렇게 6년 간 정붙였던 집터를 떠나게 되었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 와중에 이사라니... 그래도 한 달은 새 집 정리에 흩어진 정신을 모아볼 수는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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