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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May 29. 2022

눈으로 그린 세상

| 지구별 여행학교 아트투어 |



가끔 꿈과 현실이 연결된 듯 헷갈릴 때가 있다. 보통은 실제 같은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너무도 그리웠던 사람과 마주보고 있을 때, 그리고 상상해왔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가 그렇지 않을까? 여기 비현실 같은 현실을 경험한 열 명의 지구별 여행자들이 있다. 어른 키 보다 높게 쌓인 눈으로 모자를 쓴 집들과 눈으로 겉옷을 입은 엄청난 나무군단들이 마중 나온 판타지 세상, 일본 아키타현(秋田県)! 과연 열 명의 지구별 여행자들은 꿈같은 이번 여행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을지 궁금하다. 이들과 함께 4일 간의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지난겨울, 이제 막 봄이 움트는 계절 사이에서 나는 하나투어문화재단 사회공헌사업인 ‘지구별 여행학교 아트투어’에 프로그램 참여 작가와 인솔자로 동행하게 되었다. C보육원 총 열 명의 원생들이 주인공이 되어 떠난 이번 여행은 일본 아키타의 곳곳을 둘러보며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는 기회와 동시에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홍시아 작가의 마음크로키, 김리아 작가의 콜라주드로잉, 두콩 작가의 필름일기 등 프로그램 참여를 통한 감성표현 활동여행이었다. 출발 전, 공항에서 아이들과 첫 대면을 했을 때는 언제나 그렇듯 낯섦과 걱정의 줄타기였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설지만 누구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었기에 말 한 마디, 태도 하나까지 조심해야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정이 많은 내가 정을 주고 또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낯섦과 걱정이란 줄 위에 올렸는지도 모른다. 내려오면 될 것을. 이런 염려가 무색할 정도로 열 명의 지구별 여행자들은 밝고, 붙임성 있고, 씩씩했다. 나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무심함과 반가움’을 동시에 보았을 때, 그제야 긴장이 풀린 걸 보면 어른이라고 어른이 아닌 건 분명했다. 아무튼 ‘우리는’ 한 팀이 되어 우리를 기다려마지않는 일본 아키타현으로 출발했고, 4일 간의 꿀 같은 시간을 기억에 담아올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몇 장면들이 있는데, 아마도 지구별 여행자들에게 평생 생생할 마음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도착하자마자 정말 꿈에서나 나올 것 같은 도깨비가 우리를 향해 환영의 발을 굴러주었다. 아쉽게도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공유처럼 로맨틱하진 않았지만 이곳 아키타의 장수와 행복을 빌어주는 수호신이라고 하니 괜히 악수라도 하고 싶어졌던 건 나뿐이었을까? ‘나마하게’ 박물관에 둘러앉아 소개영상을 넋 놓고 보거나 줄을 서서 지푸라기 의상을 입어보는 아이들을 보면 다행히 아닌 것 같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눈의 세상은 수십 년을 살아 본 나로써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그 틈에 나는 투명 필름을 차창에 붙여 흰색 마카로 여행의 감성을 한 줄 메모로 적어보게 했는데, 이번 지구별 여행자 중에는 제법 시인 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이 지점은 과히 감동코드!



사실 C보육원 아이들에게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여권의 두께와 찍혀있는 여러 국가의 출입인증들을 어른들의 것과 비교하며 궁금한 것도 참 많았던 아이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도장과 여러 개의 여권을 갖게 될 거라며 괜히 부러움 섞은 말로 대답해주면서 여행이란 뭘까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았다. 더 많은 곳, 더 많은 시간을 내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 있는 건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 많이 보고, 경험한 만큼 마음가짐이나 삶의 태도가 바뀌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횟수나 기간이 여행의 의미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단 한 장소에서 잠깐의 여정일지라도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얼만큼 받아 들이냐에 따라 저마다의 여행은 다르게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열 명의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여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오랜 무사들의 마을 ‘가쿠노다테’와 신비로운 다자와코 호수에 다녀온 둘째 날과 일본의 유명한 여름축제 ‘간토축제’ 박물관에 다녀와 뜨끈하게 온천을 즐긴 마지막 날에는 각각 김리아 작가와 홍시아 작가가 직접 마련한 미술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하루 종일 여행지를 이동하면 지칠 만도 한데, 조금도 피곤한 내색이 없이 팔팔한 아이들의 에너지가 아직도 신기하면서도 대견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콜라주드로잉을 할 때도, 명상 후 그려낸 마음크로키 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아이들의 집중력이었다. 물론 작품들도 당장 갤러리에 걸어도 손색없을 만큼 독특하고 참신했다는 것! 그림일기처럼 기억나는 일과를 그린 아이도 있지만 평소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이미지를 아키타와 연결시킨 천부적인 아이도 눈에 띄었다.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이 이 과정 또한 여행의 일부분으로 여겼다는 것과 일본여행에서 얻은 감성으로 종이 위의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할, 오직 아이들만의 ‘눈으로 그린 세상’이었다.


눈(snow)이 많아서 온통 하얀 일본 아키타에서 그 보다 맑고 고운 아이들의 눈(eyes)으로 바라본 세상. 어떤 세상 현실이고 또 어떤 세상이 꿈일까? 바라 건데, 아이들이 그 중간 어디쯤에서 스스로 현실과 비현실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밝고 건강한 눈으로 서 있었으면 좋겠다.




글|사진|그림 두콩(doooo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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